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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일기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2003.05.02 14:38

'지리산 일기'(25)

조회 수 73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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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농장과 인터넷
                (4월30일)

4월30일 오전, 회사에 출근하자마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여기 00장인데요!"
"예에, 안녕하세요. 아니, 그런데..!?"

지리산 쌍계사 입구 석문(石門)광장에 있는 00장의 000 여사였다.
중년 나이에도 변함없이 맑고 낭랑한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반갑게 들렸다.

하지만 웬 일일까?
그녀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거의 없는데...!

00장 0 여사와는 오랜 기간 이웃처럼 친근하게 지냈다.
'화개동천' 태생으로 고향을 떠나본 일이 없는 그녀다.
그보다 그녀는 화개동천의 '인간 사전(辭典)'이었다.
<지리산 365일> 취재는 물론, 화개동천을 찾을 때마다 나는 '인간 사전'인 그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그런 친분으로 우선 몇 마디씩 서로 안부말을 주고받았다.
그런 뒤 그녀가 본론(?)을 꺼냈다.
목소리가 착 가라앉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정색을 하고 말하는 듯했다.

"이런 일로 전화를 드려 죄송하구만요...그렇기는 하지만...!"
"......!?"
"그 놈의 인터넷이 남의 농장을 망쳐놓고 있다구요!"
"무슨 말씀이신지? 인터넷이라니요?"

필자와도 연관이 있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근교산' 산행 코스 안내 글이 연재되고 있다. 그 가운데 지난해 소개된 글 하나가 문제가 된 것이다.

지리산 주능선 영신봉에서 갈라져 뻗어내린 산줄기가 삼신봉을 거쳐 시루봉(1,140미터)으로 연결된다.
쌍계사 앞 쌍계교에서 '시루봉'으로 오르는 코스를 이 '근교산'에서 소개한 것이다. 내원골~내원재도 아니요, 형제봉(성제봉) 능선도 아니어서 나도 전혀 모르는 코스였다.

소개글은 "잡목과 산죽에 뒤덮인 미답에 가까운 능선을 헤쳐가는, '도전구간'인 셈이다"라고 코스의 특징을 기술하고 있었다.
국립공원 경계지점을 살짝 벗어나 있어, 이런 코스를 개발하여 소개하는 까닭을 짐작할 만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가 됐는가? 이 코스 소개 글에는 바로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었다.

[<사유지이므로 출입을 통제한다>는 표지판을 만난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다른 길은 없다.
빠른 걸음으로 5분이면 고립된 능선으로 빠져나올 수 있으므로 관리자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사유지', 곧 개인의 농장을 통과하는 것은 5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농장 구간을 통과하는 데는 빠른 걸음으로도 30분~40분 이상 걸린다는 것이다.
소개글에는 관리자에게 양해를 구하라고 했지만, 5분이면 통과할 수 있다니, 굳이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할 법하다.

더 중요한 것은 사유지 전체의 광대한 임야를 울타리로 두른 것이 아니므로 산꾼들이 5분 정도 걸어간 뒤에는 이미 사유지(농장)를 지나친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5분 정도 그 길을 지나가면 아주 별천지와 같은 자연세계가 나타난다. 사실은 그곳부터 본격적인 자연농원이다.
취나물, 고사리, 두릅, 더덕, 송이, 오미자 등 산채와 약용식물들의 천국이다. 금낭화  군락지 등이 눈길을 끌게 한다.

"이게 웬 떡이냐!"
등산객들은 쾌재를 부른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마구잡이로 채취해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두는 하늘에서 떨어져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주인이 대를 이어 애써 가꾸고 있는 소중한 농작물이다.
실제로 차밭도 조성해 놓았고, 꽃나무와 잣나무 등의 조림도 해놓았다.
'해림농장'이란 이름까지 달고 있지만, 그마저도 무시되는가 보았다.

산꾼들은 남의 농장을 주인이 없는 무주공산으로 생각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어찌 호미와 칼 등의 연장까지 들고와선 남의 농산물을 마구잡이로 채취해 가겠는가.

어쨌든 '5분이면 농장을 통과한다'는 안내글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었다.
아마도 이 글을 쓸 때 무슨 착각을 했는가 보았다.

"친정 아버지가 오랜 세월 가꿔오시다 이제 연세가 많으셔서 요즘은 남동생이 대를 이어 농장을 꾸려가고 있지요. 그런데 등산객들이...!"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어쩌랴.
"당장 그 인터넷 글부터 삭제해 주세요. 산꾼들이 그걸 복사해서 끊임없이 몰려오고 있다니까요. 이만저만 손해를 입는 것이 아니예요!"

나는 인터넷 관계자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얻어냈다.
농장주인의 뜻을 존중하여 인터넷의 '시루봉' 안내글도 곧장 삭제했다.

000 여사는 자기 동생에게 직접 전화로 사과라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일러주는대로 농장 주인에게 바로 전화를 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농장에 손해를 끼치게 되어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등산객 열명이 지나가면,그 열명 모두가 우리 마음과 같지는 않더라구요"

농장 주인은 의미 있는 한 마디를 던져주는 것이었다.


  • ?
    솔메 2003.05.02 14:50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무분별한 산꾼들의 금도를 넘는 산행이 사유재산도 침해하는군요...
  • ?
    최화수 2003.05.02 20:06
    농장을 통과하는데 30~40분이 걸리는데, 뭔가 착각하여 5분이면 통과한다고 기사를 쓴 것에 근원적인 잘못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농장의 농작물은 뭔가 달라 보였을 텐데요...어쨌거나 하나의 교훈이 될 만한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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