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일기'(27)

by 최화수 posted May 1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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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말 많은 산', '말 없는 산'(2)
                               (5월4일)

서양화가 김인환님 가옥은 양옥집이었다.
서양화가 김영주님 가옥은 토담집이었다.
판화가인 주정이님 가옥은 기와집이었다.

양옥, 토담집, 기와집은 제마다 그 개성과 특징을 살렸다.
화가들의 집답게 그림처럼 아름답고 우아하게 지어놓았다.
그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멋진 미술작품이었다.

이들 가옥들은 나에게 적잖은 마음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미술작품 차원으로 아름답다거나 해서가 아니다.
그 이유는 전혀 엉뚱한 데 있었다.

서양화가 김인환님과 김영주님 가옥이 자리한 산골
경남 밀양군 초동면 봉황리!
경남 밀양군 초동면은 나의 고향이다.
봉황리는 내가 태어난 마을과는 약간 떨어져 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익히 잘 알고 있던 곳이다.

봉황리 뒷산은 종남산 줄기이다.
뒷산 산세가 봉황(鳳皇)이 나래를 펴고 있는 듯하다 하여 봉황리로 불린다.
이 봉황리에 진짜 봉황이 잇달아 찾아들었다!?
부산에서 활동해온 명망 높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이 마을에 집과 작업실을 짓고, 이곳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인환, 김영주님 역시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까지 이 봉황리를 단 한번도 눈길조차 주어본 적이 없었다.
산세가 봉황 어쩌구 하지만, 변변한 계곡조차 없지 않은가.
이곳과 아무 연고가 없는 화가들이 어떻게 봉황리를 주목했던 것일까?

서양화가 김영주님의 토담집이 그 대답을 들려주었다.
계곡이기는 커녕 작은 개울가에 집을 지었는 데도 심산유곡과 다름이 없는 분위기다.
지형과 지세를 참으로 신통절묘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또 판화가 주정이님 가옥은 김해시 경계지점의 신어산 자락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지척의 거리이다.
그런데 그의 기와집을 찾은 나는 깊은 산중 절간과 다름없는 것에 너무 놀랐다.
온갖 수목과 화초들이 집안을 뒤덮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등잔밑이 어둡다!
아, 그래서 예부터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생겨났나 보았다.
진리 또는 진정한 보배는 의외로 소리없이 조용하게, 또 가까이 있는 것이었다.
진리의 성(城)은 누구도 떠들지 않고, 조용조용히 쌓았는가 보았다.

사실 나는 틈만 나면 '지리산 오두막'을 떠들고는 했다.
하지만 그 말 자체가 얼마나 부끄러우냐!
지리산은 가뜩이나 이런저런 말들로 시끌벅적한 산이 아닌가.

나의 말문마저 막게 하는 것은 뜻밖에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경남 밀양군 초동면 종남산 자락(봉황리),
김해시 신어산 기슭(묵방리)의 가옥들!

진리는 가까이 있다.
다만 등잔밑이 어두울 뿐이다.

우연히 이들 가옥 순례길에 낙동강 본포나루의 뱃사공 집도 찾게 되었다.
지금은 '알 수 없는 세상'이란 작지만 풍성한 찻집.
뜻있는 이들의 사랑이 모래알처럼 넘쳐나고 있었다.

'진리의 성'은 요란하거나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가까이, 등잔 밑에 자리하는 것이었다.
'보물의 성곽'은 아무 말 없이, 조용조용히 쌓는가 보았다.
말 많아서 잘 되는 일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서양화가 김인환님과 김영주님의 경남 밀양군 초동면 봉황리 가옥!
그리고 판화가 주정이님의 경남 김해시 생림면 묵방리 가옥!
나의 '지리산 오두막'을 위한 견학용 가옥으로 추천이 된 집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아이러니라니!
이들 세 가옥은 나의 '지리산 오두막'에 찬물을 끼얹었다.
또한 말 많은 지리산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를 갖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