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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일기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2003.06.12 18:39

'지리산 일기'(33)

조회 수 79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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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개동 아라리' 왜 없나?
                             (6월8일)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리. 첩첩산골 정선땅에서 하늘을 가장 많이 바라볼 수 있는 평지이다.
풍작일 때는 식량도 남는다 하여 '여량(餘糧)'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 '아우라지'가 있는데, 두 갈래 물이 한데 모여 어우러지는 나루라는 뜻이다.

정선 아우라지는 북쪽의 구절리에서 흘러오는 구절천과 남동쪽의 임계에서 흘러드는 골지천이 만난다.
두 물줄기가 한데 어우러져 조양강을 만들고, 동강이 되어 영월 땅을 적시고, 남한강의 상류를 이룬다.

두 내가 만나는 합수머리 언덕배기 소나무 숲에 댕기머리를 곱게 드리우고 하염없이 강을 바라보고 서 있는 처녀가 있다.
'아우라지 처녀상'이다.
뒤쪽의 '아우라지비'에는 그 노랫말이 새겨져 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정선 아라리'의 대표적인 가사이기도 하다.

1910년대, 여량리의 한 처녀와 구절리 너머 유천리의 한 총각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싸리골 동백을 따러 가기로 했다.
하지만 밤새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나 나룻배가 떠내려갔다.
그래서 안타까움으로 서로 바라만 보게 된 두 사람의 심정을 당시 아우라지 뱃사공이 정선아라리로 불러냈다.
그이가 장구를 잘 치는 지씨 아저씨, 일명 '지장구'였다. 지장구는 실제 인물이다.
노랫말 속에 나오는 올동백 따러 가기로 했던 아가씨가 바로 아우라지 처녀상의 주인공이다.

정선 아라리는 본래 '아나니'라고 불렸다.
'아나니'란 누가 나의 심정을 '알리'에서 연유한다.
그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아라리, 아리랑으로 바뀌게 됐다.
지금도 '정선 아나니'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정선 아라리의 발생은 600년 전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오른다. 고려 왕조를 섬기던 선비들 가운데 조선의 창업을 반대하여 송도에 은신하다가 정선(지금의 남면 낙동리 거칠현동)으로 숨어든 이들이 있었다.

정선읍에서 33번 지방도로를 따라 험준한 쇄령(현재는 터널)을 넘어가면 '居七賢洞(거칠현동)' 표지석을 만난다. 여기서 계곡을 따라 1km 정도 들어가면 오른쪽 언덕 위로 1m가 채 안되는 '칠현비(七賢碑)'가 서 있다.

고려 왕조를 섬긴 선비들 가운데 전오륜, 김충한, 고천우, 이수생, 신안, 변귀수, 김위 등이 불사이군의 절개를 고수하며 송도(개성)에서 내려와 산나물을 뜯어먹고 살며 이곳에 은거했다.

이 일곱 유신이 고려 왕조에 충성을 다짐하며 비통한 신세를 한시로 지어 불렀는데 한시를 이해 못하는 지방 사람들에게 와서 뜻이 쉽게 풀어지고 감정이 살려진 것이 오늘에 전해지는 아라리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정선아라리의 발상지라고도 하는 것이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 장마가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면 해당화는 왜 피며
모(暮) 춘삼월이 아니라면 두견새는 왜 우나'

하지만 거칠현동의 정선아라리 발상지설은 보다 권위적인 대의명분을 붙이고자 하는 이들의 생각이고, 정선아라리의 긴 역사와 보편성을 보면 고려 유신들이 정선아라리의 음조를 익혀 가사를 붙인 듯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선 아라리는 고려 유신의 불사이군 충정이나 애오라지 처녀의 순애보만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민중의 한과 설움은 물론, 남녀의 내밀한 사랑 등 노골적인 내용도 많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고려 유신들에 대한 정선 사람들의 추모 정신이다.
600여년 전 고려 유신 7명이 정선 땅에 찾아들어 은거하고 살았던 '거칠현동'을 정선 사람들은 결코 잊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가장 즐겨 부르는 '정선 아리랑'에 담아 노래로 기리고 있다.

정선 거칠현동과 정선 아리랑은 지리산에 은거한 신라의 최치원, 고려의 녹사 한유한 등을 떠올려준다.
최치원, 한유한의 발자취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들이 '세이암(洗耳岩)' '취적대' 등으로 지금까지 전해온다.

하지만 지리산 주민들이 그들을 기리고 노래하고 선양하는 것은 그 어느 구석에도 없다.
지리산에서 무엇인가 허전한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런 데서도 연유하지는 않나 한다.
  • ?
    솔메 2003.06.13 11:26
    '지리산 博士'님이 지리산골을 떠나 '정선아라리'의 본고장에서 그 유래와 풍치를 더듬어 보며 지리산과 비교, 느끼신 소회가 각별하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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