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일기'(38)

by 최화수 posted Jul 0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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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저 오두막에는 누가 살까(4)
                        (6월22일)

'화개동에 꽃이 지는데
청학의 둥우리에 학은 아니 돌아오고
잘있거라, 홍류교 아래 흐르는 물이여
너는 바다로 돌아가고
나는 산으로 돌아가려 하네'
                <서산대사 / '출가입산' 시>

고은(高銀) 시인은 지리산의 벽소령, 통천문 등지에서 오묘한 명언들을 남겼다.
쌍계사에서 던진 그의 한 마디도 우리 가슴에 많은 생각을 갖게 해주는 명언이다.

"출가(出家)라는 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쌍계사엘 가는 것이 출가다.
도(道)가 다른 데서 따로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리산엘 가면 깊어진다."

고은 시인의 이 말을 몸소 실행에 옮긴 이가 곧 부산 광복동의 찻집 '차마당'의 주인 미남자, 오늘의 '지리산 법화선원' 법공스님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법공스님은 7년 전 걸망 하나만 메고 무작정 지리산 쌍계사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이는 쌍계사 사하촌인 모암마을에 방 하나를 얻어두고, '생사를 넘나드는 고행'을 거듭했다.
그이는 특히 날마다 쌍계사 금당지를 찾아 육조 혜능의 정상(머리) 참배를 계속했다고 한다.

고은 시인의 "출가라는 게 따로 있지 않고, 쌍계사에 가는 것이다. 도가 다른 데서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리산엘 가면 깊어진다"는 말이 사실임을 법공스님이 입증해 보인다. 그이는 쌍계사 금당지 참배를 계속한 끝에 삼신동 한 오두막 명당에 법화선원을 열게 된 것이다.

그이가 꿈에 계시를 받아 부처님의 법(法)을 의미하는 달마도를 그리게 되고, 신통력을 발휘하는 이 달마도를 많은 중생들에게 보시하게 된 것은 어쨌든 좋은 일이라고 하겠다.

"달마는 절대로 그리려는, 혹은 그려지는 대상이 아니라 바로 무상(無相)한 나 자신입니다."
법공스님의 말이다.
"자신을 비우는 만큼 달마는 채워지고, 자신을 죽이는 만큼 달마는 살아나게 되지요."

법공스님은 손수 그린 금니 달마도 한 장을 나에게 선물했다.
"이 법화선원 토굴을 일반인들도 찾아와 자연과 더불어 수행할 수 있는 달마기도도량으로 발전시키고자 7월부터 중창불사를 벌이게 됩니다."

지리산 법화선원으로선 대웅전 건립이나 천불조성 불사가 간절하게(?)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정한 불자가 못 되는 나는 이 이 정겨운 흙집 오두막 대신 왜 대웅전을 건립하고, 천불을 조성하려는지 쉽게 이해하지를 못 한다.
법공스님과 나 사이의 거리감이 아득하다는 무거운 마음이 따르는 것이었다.

통영 미륵섬 정상 남쪽에 미래사(彌來寺)가 있다. 울창한 삼림으로 둘러싸인 이 미래사는 대웅전과 요사채, 아자(亞字)형 종각 등이 웅장하고 날아갈 듯 근사하다. 주차장과 연못 등이 잘 갖추어져 있는 것에서 무슨 궁전이나 대가집 별장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이 미래사는 불과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두간 초옥이 전부였다. 당시에는 사람의 발길도 워낙 뜸하여 우루루 몰려간 등산객들에게 뜨락에서 밥을 지어먹도록 배려해주기도 했었다. 노스님 한 분이 수행하는 소박한 토굴이었다.

지금은 당우부터 당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주차장에서부터 정숙한 분위기를 요구하는 여러 가지 경고입간판들이 세워져 있다. 사찰의 중창 불사,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정말 필요한 것인지, 불자가 아닌 나에게는 난해하게 생각되는 때가 적지 않다.

지리산 삼신동(신흥), 화개천 이 쪽에서 건너다볼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던 오두집 한 채, 그 오두막집 주인은 뜻밖에도 지난날 나와 알고 지내던 부산 광복동의 찻집 주인이었다.
그런데 그이는 이미 출가한 스님이었고, 이 오두막은 석가모니 본존 석불 좌상을 모시고 스님이 기도정진하는 법화선원 토굴이었다.
여기까지는 이 세상의 인연에 대한 놀라운 감동이 따랐었다.

하지만, 법화선원이 7월부터 벌인다는 대웅전 중창 불사 등이 나의 마음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것을 '난해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어떨지...!
법공스님은 신흥마을 화개천 다리를 건너는 곳까지 걸어나와 나를 배웅했다.
때마침 화개천의 물소리가 어떻게나 요란한지 모든 소음을 삼겨버리는 것이었다.

'밝은 달은 쌍계사 시내를 비추고
흰 구름은 산봉우리를 앞뒤로 하네

중은 꽃비를 맞으며 앉았고
나그네는 조는데 산새만 우네.'
                   <서산대사 / 쌍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