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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일기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2003.07.16 15:39

'지리산 일기'(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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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비오는 날의 수채화(2)
                      (7월5일)

'푸르다 못해 검푸른 강 늘 봐도 맑은 눈빛

흰 구름 흘러가는 무동산을 품에 안고

그리운 우리 님에게 긴 사연을 띄운다.

물 깊어 정도 깊은 신방촌을 얼싸안고

흰 구름 산 그림자는 무슨 생각 키웠는가

그림 속 푸른 여울에 님이 저기 오시네.'
              *신방촌:섬진강 하류 하동포구의 강촌
              <오영희 / 비 갠 신방촌-오원동님의 수채화 '雨後'에 부쳐>


지리산 동부 관문 시천(矢川).
덕천강변 도로를 따라 산모퉁이를 돌아들면 천왕봉이 반겨준다.
정면으로 올려다보이는 지리산 천왕봉.
남명 선생이 이곳에 '산천재'를 열었던 것도 천왕봉이 올려다보였던 때문이리라.
그이는 날마다 산천재 뜨락에서 천왕봉을 우러러보며 간절하게 되뇌었을 것이다.
"하늘이 울어도 천왕봉은 울리지 않는다!"

덕천강변 산모퉁이를 돌아들었지만, 천왕봉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천왕봉은 두고라도 그 앞의 구곡산마저 허리 밑둥만 겨우 드러나 있다.
빗줄기는 뜸해졌지만, 짙은 운무가 영봉과 산등성이를 삼켜버렸다.

한 일주일 쯤 전의 일이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서울에서 지리산을 찾은 분이 나에게 전화로 소리쳤다.

"산이 없어요. 산이 사라지고 안 보여요."
지리산, 그 산속에서 산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산 속에서 외친다, "산이 보이지 않는다"!?
전화기를 타고 들리는 그 말에서 비에 젖은 지리산 숲의 풋풋한 냄새가 풍겼다.

산 속에서 소리친다, "산이 없다"고!?
그 외침에는 비에 흠뻑 젖은 지리산 현장의 생동감이 역설적으로 담겨 있었다.

"산이 없다", "산이 사라졌다"란 말에 따르는 절묘한 여운...
빗줄기와 연무가 번갈아 감싸는 지리 영봉을 생생하게 떠올려주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지리산!
때로는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마음의 눈으로 보지 않던가?
아니,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때마침 사랑이 빗물에 젖어드는 것과 같기라도 하다면 그 그림 얼마나 멋질까!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되리라!
'비오는 날의 수채화'!

시천에 닿았지만, 천왕봉은 흔적도 없고, 구곡산도 운무에 깊이 잠겨 있었다.
"산이 보이지 않는다!"
"산이 사라지고 없다!"
일주일 쯤 앞서 들었던 그 말 그대로다.

사물을 어찌 눈으로만 보랴.
사랑하면 마음으로 보리라!
사랑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

나는 갑자기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산 속에서 산이 보이지 않네요!"
그에게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차분하게 평상심을 되찾아야 했다.
잊고 있던 풍수지리학 교수님을 문득 돌아보았다.
그이는 차고 냉정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그이는 차분하게 풍수지리를 보고자 할 것이다.
그러려면 저 두터운 운무부터 걷혀야 할 터인데...!

하지만 나는 달랐다, 이런들 저런들 어떠랴 였다.
아니, 나는 귓가에 맴도는 전화 목소리를 즐기고 있었다.
"산이 없어요, 산이 사라지고 안 보여요!"
'비오는 날의 수채화'!
아, 음악 선율이 겹쳐 들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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