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일기'(11)

by 최화수 posted Mar 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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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마근담(麻根潭) 할머니(2)
                  (3월 18일)

사리~안마근담 7.5㎞,
계곡을 따라 도로가 뚫려 있다.

'덕산 사리에서 20리 실골은 안마근담까지 차도를 만들어 놓아,
이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흡사 히말라야 산간오지를 걷는
착각이 들 정도로 한적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장가만 안 갔어도 안마근담에 들어가 토굴 짓고
공부해 신선 아니면 도사가 되었을 것이다.'
                                     -성락건 <남녘의 산>

시멘트 포장의 차도가 있었지만 나는 그 길을 걸어서 오갔다.
'히말라야 산간 오지를 걷는 착각이 들 정도'라는
성락건님 글 때문이었다.

안마근담에 대한 그이의 소개글은 다음과 같다.

"81년 감투봉 남쪽 마을 아래 안마근담 마을에 갔을 때
빈집만 한 채 있어 언제 이곳에 와 살아야지 했는데,
10년 지난 91년에 다시 와보니 상전벽해가 되어 있었다.

엘리아선교원이란 종교단체가 들어와 예배당, 학교,
과수원, 목공소, 축사, 방앗간, 식당, 비닐농장을 꾸려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마을을 꾸미고 석국이라는 잡지까지
발행하고 있었다.'

종교단체의 공동체마을?
그것이 나의 발걸음을 쉽게 내키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막상 가보니 뭔가 이상했다.
예배당은 두고라도, 십자가조차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돌나라 마근담 농업학교'였다.

"종교단체가 아니라우!"
돌아나오다 길에서 만난 그 할머니가 펄쩍 뛰었다.
"자연농법의 공동체 마을이라니께."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는 생식마을이란다.
"다 알아유, '한농'이라믄! 울진과 전주에도 이시유!"

마근담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마을인지
물론 나는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 한다.

그보다 그 할머니를 만난 사실이 중요했다.
20리 골짜기길을 터벅터벅 걸어간 덕분에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도 마근담을
무슨 종교단체 마을로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마근담의 경우 91년 이후 선교원을 대신하여
현재의 공동체마을이 들어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