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일기'(15)

by 최화수 posted Mar 2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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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산정무한(山情無限)
                 (3월24일)

토요일 저녁마다 휴대폰이 울린다.
그러니까 벌써 몇 주째다.
그는 주말마다 전화를 걸어왔다.
전기도 없는 지리산 산중고도(山中孤島),
쌍재의 '공수'아우님이다.

"형님, 공숩니다!"
"어, 그래, 공수!?"
"오늘 안 들어왔습니꺼?"
지리산에 들어오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술잔도 나누고, 얘기도 나누고 싶단다.
그도, 나도, 똑같이!

"이런저런 일 때문에..."
나는 이번 주말 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병원 중환자실에도 가고...
집안 일, 회사 일이 겹쳤다.

아니, 이 달 들어선 주말마다 일이 꼬였다.
한번은 지리산에 가서도 그를 만나지 못 했다.
그는 휴대폰 속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형님, 눈에 갇혀 내려갈 수가 없네요!"

겨우내 동토였던 쌍재도 이제 봄인가 했는데,
3월 춘풍이 살랑살랑거리는가 했는데...
어랍쇼! 느닷없이 폭설이 쏟아졌다고 했다.
'눈에 갇힌' 것이 그로서도 뜻밖인 모양이었다.

"한 주 쉬었다가 두레네집에나 가자!"
공수네, 두레네는 잘 어울리는 이웃이 되리라.
그들 사이에 순수의 향기가 샘솟을 터이다.
눈이 녹으면 두레네집에 함께 가자고 했는데,
나 쪽에서 또 일이 생겨 약속을 미뤄야 했다.

3월22, 23일 토, 일요일.
이틀 거푸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아침산행으로 신어산 정상까지 오른다.
오름길, 내림길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산길 내내 가슴에 뜨겁게 보듬었으니...
지리산의 신선한 향기!
지리산 사람들의 산정무한(山情無限)을!

그리고 더 뜨겁게 보듬은 것이 있다.

나에게 보내온 위로와 용기의 메일들.
고운 마음씨로 걸러낸 아름다운 말씀.
가슴 깊이 어찌 각인(刻印)되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