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일기'(17)

by 최화수 posted Mar 2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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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여기 한번 안 넘어오능교?"(1)
                         (3월26일)

'내마음 내사 모를 것
꽃불 되어 타는 5월

산 첩첩 두견새 울고
눈 시리도록 푸르른날
가슴에 하늘을 여는
라일락 입술이여.

산과 들 가지가지
잎잎으로 서는 여름
나비등 넘치는 햇살에
포도 알알 터지는 날
수줍음 너울을 쓰고
칡꽃으로 오실 그대.'
       -<강기주 / 연정>

차의 고장 화개동천의 시인 강기주,
계간 <하동茶文化>의 발행, 편집인이다.
하동군 화개면 용강리 60번지,
독특한 운치의 '끽다거찻집' 주인이다.

"여기 한번 안 넘어오능교?"
그가 오늘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똑같은 말로 운을 뗀다.
"여기 한번 안 넘어오능교?"

그가 전화를 걸어온 까닭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하동茶文化> 원고 독촉이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책을, 그것도 계간지를 내는 일이
정말 쉬울 수 없을 것이다.
산악회지 <우리들의 산>을 달마다 펴냈던 나의 경험이
그 어려움을 능히 짐작하게 해준다.

어쨌거나 그의 인삿말이 재미있다.
"여기 한번 안 넘어오능교?"
그 사이 왜 화개동천에 가지 않았겠는가.
나는 수없이 드나들었다.
다만 그를 만나지 않았을 뿐이다.

"여기 한번 안 넘어오능교?"
이 말에 담긴 그의 뜻은 아주 깊다.
차든, 막걸리든 한번 실컷 마셔보자...!
그리고 터놓고 지리산을 한번 얘기해보자!
그런 그의 속내가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만나지 않았다.
원고는 보내면서도 그를 만나지는 않았다.
왜?
다른 볼일에 정신이 팔려서...!
어쩌다 마음먹고 찾아가면 그가 없기도 했다.

"한번 넘어가야지요!"
나는 늘 하듯이 그렇게 대꾸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정말 그를 찾아갈 것이다.
사실 그와 만나면 나눌 이야기도 아주 많다.
번번이 "간다간다" 하고선,
가지 못한 것부터 먼저 사과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