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일기'(46)

by 최화수 posted Aug 20, 200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30> 운봉애향회의 감사패(2)
                        (8월15일)

운봉중학교 교정은 흥겨운 식전 행사로 축제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운동장은 연단 좌우 본부석과 마을단위로 천막을 쳐놓고, 가마솥에서 꺼낸 음식을 나누기도 했다.
국악의 성지답게 운동장에선 수준높은 국악공연이 열기를 더하고 있었고...

양복 차림으로 이런 행사장에 들어서는 것이 나로선 몹시 어색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도 없는 일.
연단 옆에서 양복 차림으로 행사 진행을 상의하고 있는 분에게 다가갔다.
인사를 나누고 보니 그이가 바로 운봉애향회 이영진 회장이었다.

"아이구,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소. 가만, 오태록씨랑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영진 회장은 나를 본부석 한 자리로 안내한 데 이어 곧 오태록님을 데리고 왔다.
십수년 전 바래봉과 서북능선을 자주 찾을 때 그이의 집에서 민박을 했었다.
그동안 너무 오래 만나지 않아 얼굴조차 잊어먹었지만, 만나고 보니 옛 모습이 되살아났다.

"1990년 바래봉 철쭉 기사가 국제신문에 난 것을 보고 운봉애향회원들과 함께 바래봉을 찾았지요. 그 이전까지 국립종축장에서 풀어놓았던 면양떼가 사라진 뒤로 어느 사이 철쭉꽃이 화원을 이뤘더구만요.
최 선생이 <우리들의 산>이란 산악회지에 바래봉 철쭉 사진을 칼러 표지에 화보로 실어주었고, <지리산 365일> 책 등등, 어쨌거나 바래봉 철쭉을 세상에 처음 소개해준 겁니다.
그로부터 바래봉 철쭉을 찾은 이들이 줄지어 몰려들었고...우리 운봉애향회도 힘을 얻어 1995년 바래봉 철쭉제를 처음 열었는데, 올해 벌써 9회 제전을 치렀네요."

바래봉 철쭉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운봉애향회 오태록님이 무슨 증언을 하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박진기 운봉읍장과 운봉애향회 부회장 한 분이 나에게 바래봉 철쭉과 황산대첩비지, 동편제 탯자리 등 운봉을 널리 홍보해준데 대해 고맙다는 인삿말을 했다.

오태록님이 얼떨떨하는 나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최 선생이 바래봉 철쭉과 운봉 일원 사적지 등을 소개한 신문기사와 산악회지, 책자 등을 이광전님이 나에게 가져 왔더군요. 운봉애향회원들이 그 자료를 일일이 확인하고는 모두 놀란 거지요. 너무 늦긴 하지만, 이번 황산대첩제 때 감사패라도 드려야 한다고 뜻을 모은 거에요."

나는 비로소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지리산 종주 챔피언 '자이언트' 이광전님이 오태록님에게 관계 자료들을 전달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광전님 때문에 나는 뒤늦게나마 감사패를 받게 된 모양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광전님에게 웬 감사패냐며 황산대첩제 식장에는 참석하기 어렵다고 떨떠름하게 대꾸했었다. 그이가 엊그제 지리산 종주를 떠난 것도 그런 서운함 때문이 아닌가 하고 짐작되는 것이었다.

박진기 운봉읍장은 굳이 사양하는 나를 억지로 본부석 맨 앞자리에 앉게 했다. 최진영 남원시장, 신홍수 재경남원향우회장 등이 나의 다음 자리에 앉았다. 신 회장은 웬 낯선 작자가 본부석 앞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궁금했을 법하다. 그래서 누구이며 왜 여기에 앉아있는지 물어본 모양이다.
신홍수 회장이 나에게 새삼스럽게 인사를 청했다. 바래봉 철쭉 등을 잘 소개해준 것에 고맙다며 환대를 하는 것이다. 또한 주위의 다른 여러 인사들에게도 나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주)인서울 이윤제 대표이사, (주)세빅 코리아 오재인 전북본부장 등 운봉애향회의 황산대첩제 등을 돕고 있는 출향인사들과도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한 이강래 국회의원과도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하루 앞날 올 줄 알았어요. 우리집에서 소주잔이라도 나누며 밀린 얘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았을 터인데..."
오태록님이 수철리 저수지 옆에 아주 훌륭한 집을 지어 살고 있다는 것은 나는 이미 이광전님으로부터 전해듣고 알고 있었다.
오태록님 뿐만아니라 처음 만난 운봉읍장님과 운봉애향회 회원님들이 나에게 하루 묵으며 술잔이라도 나누자며 인정을 한껏 베풀어 주었다.

감사패, 감사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감사패, 그것보다 몇 배 더 값진 것이 운봉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이었다.
나는 운봉애향회의 황산대첩제에서 바래봉 철쭉처럼 아름다운 '지리산의 정(情)'을 한 아름 감동적으로 가슴에 받아 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