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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일기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2003.09.09 17:58

'지리산 일기'(48)

조회 수 264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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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오두막 안쪽의 토담집(1)
                            (8월29일)

"아, 그 큰 바위를 용케 옮겨냈군요!"
"하아, 그렇지! 그걸 치웠으니까 이렇게 집을 세운 것이지요."
불일평전을 찾은 나는 변규화옹이 새 집을 얼마나 지었는지 궁금했다.

오두막 뒤편 명당 자리에 새 토담집이 거의 완전한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다.
나는 토담집도 집이지만, 그 자리에 있던 집채같은 바위를 치워낸 변규화님의 초능력(?)에 먼저 감탄을 금하지 못 했다.

지난해 여름이었다.
변 옹은 나에게 집뒤의 명당 터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집을 앉혀야 할 곳에 집채처럼 엄청나게 큰 바위 하나가 턱 버티고 있었다.
아무 장비도 없이 무슨 재주로 그 바위를 옮길 수 있다는 것일까?

"그러니까 사람의 머리라는 것이 재미가 있다 그 말이오. 머리를 쓰면 안 되는 일이 없거던!"
변규화 옹은 그 바위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어떤 동력장비도 쓰지 않고 치울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것을 해낼 주인공은 그 자신이었다.

변규화옹은 불일평전에서 어언 30년의 세월을 살아왔다.
일시적으로 가족과 함께 지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이 혼자서 보냈다.
산속에서 혼자 살다보면 집채같은 바위도 옮길 수 있는 지혜나 힘을 안겨주는가 보았다.

변 옹은 집채같은 그 바위를 옮겨내고 그 자리에 어느새 토담집 한 채를 지었다.
지붕과 벽체 등의 작업이 거의 끝나고 마지막 마무리 손질 과정만 남겨두었다.
그이 혼자 살고 있다보니 집 짓는 일도 그이 혼자 해낸 것이다.

불일평전에는 '봉명산방(鳳鳴山房)'이라 불리는 큰 오두막이 이미 있지 않은가.
물론 있다.
소설가 정비석씨가 이곳에 들러 '봉명산방'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그 오두막이 변함없이 건재한다.

'봉명산방'은 불일폭포를 찾는 사람들에겐 이미 친숙한 집이다. 소망탑(素望塔)과 반도지(半島池) 등과 어울려 포근한 느낌이 앞서는 오두막이다. 소박하고 허름하기는 하지만, 가느다란 굵기의 나무를 같은 길이로 잘라 쌓아올리는 등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끄는 것이다.

불일평전 오두막은 '봉명산방'이란 이름이나 그 외양부터 다소 색다르지만, 알고보면 내부도 대단하다.
봉명산방 주인 변규화님은 아들이 결혼하여 이곳에 신접살림을 차릴 때 오두막 증축공사를 했다. 중축된 지붕 위에는 유리병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색다른 아이디어를 동원하기도 했었다.

봉명산방 내부는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
'불일평전 러브스토리'를 꽃피운 아들 변성호 내외에다 손자 손녀도 함께 살았다.
하지만 아들 내외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오두막은 변규화옹 혼자 차지가 됐다.

변규화님이 쓰고 있는 방에는 책과 함께 오디오가 놓여 있다.
그이는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다.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다른 무엇을 하더라도 공간은 넉넉하게 남는다. 비워둔 방도 따로 있다.

그런데 왜 또 집채같은 큰 바위를 치우고 오두막 뒤편에 새로운 토담집을 짓고 있는 것일까?
혼자 살고 있는 그이에게 무엇이 부족하여 또 다른 집을 손수 힘들게 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없을 수 없다.

변규화님은 불일평전의 기존 오두막인 '봉명산방'도 혼자 살기에는 그 공간이 넉넉하게 남아돌지만, 그에게는 산아래에 또 집 한 채가 있다.
국사암 사하촌인 목압마을에 그림처럼 이쁘게 아주 잘 지은 토담집 한 채가 따로 또 있는 것이다.

목압마을의 그 집 역시 변 옹이 혼자 힘으로 지었다. 더구나 그 집은 그이가 정말 특별한 애정과 정성을 쏟아부은, 그야말로 그이의 손으로 한뼘한뼘 혼신의 노력으로 지었던 것이다.
불일평전에 살던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를 산 아래 마을에서 살도록 하고자 하는 특별한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들 가족은 그 집으로 옮긴 얼마 후 서울로 떠나갔다. 아들 내외가 서울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얻게 되어 서울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목압마을의 그 집에 그토록 엄청난 정성을 들였었는데...

그런데 변규화님은 불일평전 오두막 '봉면산방' 뒤편에 또 새로운 토담집 하나를 짓고 있다.
웬 까닭일까?
'봉명산방'만으로도 생활공간이 남아도는데, 왜 또 토담집을 짓고 있는 것일까?  
  • ?
    moveon 2003.09.18 18:43
    왜?일까 궁금^u^
  • ?
    김현거사 2004.01.02 07:45
    큰 돌 그 아깝다.돌이 원래 앉은 그자리에 그냥 돌을 두고 집을 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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