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일기'(51)

by 최화수 posted Oct 2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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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달빛초당'과 '오두막 현실'
                            (10월18일)

'천둥 번개 그치고
비 개인 靑山

바람이 살랑살랑
창포잎 흔드는데

옥구슬 굴리는
꾀꼬리 울음

왜 사냐고 묻질 말게
삶과 죽음 묻질 말게

다로에는 차가 끓고
하늘에는 뭉게구름.'
             <김필곤 / 삶과 죽음 묻질 말게>

원지(院旨)는 지리산 동부 관문의 교통요지이다.
신선들이 산다는 뜻의 '단구성(丹丘城)'으로 불린 단성과 경호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본다. 단성, 곧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나루터로 나룻배가 오랜 세월의 역사를 실어나른 곳이기도 하다.

물론 그 나룻배는 사라진 지 오래된다.
나룻배를 대신하는 교량이 경호강 위에 걸려 있는데, 지난 80년대 큰비에 이 다리가 떠내려간 적이 있었다.
그 뒤에 왕복 2차선의 튼튼하고 육중한 교량이 놓여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10월18일, 토요일 오후 5시께였다.
나는 초암 권두경 아우와 함께 원지의 한 주택 관련 업체를 찾아갔다.
지리산 오두막 집터 고르기가 시작된 만큼 주택과 관련된 문제를 알아보고자 해서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뜻밖에도 솔메거사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화개동천입니다. 국사암과 단천골 등을 두루 둘러본 뒤 화개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이제 '달빛초당'을 방문할 참입니다."

'달빛초당'을 방문하겠다는 그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벽사 김필곤 시인의 '달빛초당'은 내가 둘러본 '지리산 오두막' 가운데 가장 지리산적인 집이었다.
'신동다송'의 저자이기도 한 김 시인과 차 한잔의 담소 또한 너무나 좋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솔직히 달빛초당에서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그 술자리에 솔메거사님을 비롯한 '지리산 커뮤니티'의 '사랑방 가족'들을 한번 모시고자 작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달빛초당에서 사랑방 가족을 한번 모시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생각으로 그쳤다.
솔메거사, 오해봉님과의 '신흥마을 만남'도 얘기로만 끝나고 말았었다.
왜 그랬을까?
그 사이 나는 화개동천을 찾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불일평전과 국사암 사하촌인 목압마을의 변규화님 오두막집도 찾았고, 쌍계별장 차실에도 들렀고, 석문광장 지리산식당에선 화개산악구조대 정대장 가족들을 불러내 얘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리산 커뮤니티'의 '사랑방 가족'과 '달빛초당'을 찾는 일은 왜 그토록 생각으로만 머물고 있었을까?
그 사이 나는 '지리산 오두막' 문제에 집착하고 있었다.
지리산 오두막은 등산이나 놀이가 아닌, 하나의 현실이었다.
어쩌면 냉엄하기까지 한 그 현실 앞에서 나는 마음의 여유를 전혀 찾지 못하고 있었나 보았다.

지난 며칠 사이 공교롭게도 화개동천으로부터 잇달아 전화가 걸려 왔다.
법화선원의 법공스님, '끽다거 찻집'의 강기주 시인, 또 쌍계별장을 찾은 한 문필가가 일부러 전화를 걸어왔었다.
그런 전화들도 나를 '지리산 오두막' 현실에서 떨쳐나오게 해주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솔메거사님의 전화 한 통화는 나에게 큰 여운을 안겨주었다.

솔메거사님과의 통화에 이어 곧 주택 관계 상담도 끝났다.
우리 일행은 곧장 귀로에 올랐다.
다른 때였다면 나는 그 길로 화개동천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원지에서 옥종 지름길로 가면 빠른 시간에 화개동천에 닿는다.
하지만 나는 어둠이 덮이고 있는 지리산을 등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서둘렀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뭔가 아쉽고 갑갑한 마음이었다.
아, 역시 화개동천으로 달려가지 못한 것이 마음에 캥겼다.
나는 '아차' 싶어 솔메거사님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달빛초당'의 김필곤 시인을 좀 바꿔달라고 하여 당부 얘기를 전한다는 것을, 그만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김필곤 시인과 전화로 연결이 되면 솔메거사님 잘 모시고, '신동다송' 책자도 기증해달라는 말을 해줄 참이었다.
하지만 나의 전화를 받은 솔메거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좀 전에 김필곤 시인과 작별인사를 하고 '달빛초당'에서 나왔어요. 차 대접도 받고, '신동다송'과 다른 시집 한 권도 선물로 받았답니다."

나는 머쓱하여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 스스로도 모르는 어느 사이, '지리산 오두막'이란 냉혹한(?) 현실에 부대끼기만 하는 듯한 자신이 부끄럽고 민망했다.
아, 구차한 현실일랑 벗어던지고 주능선에서라도 한번 다녀와야 하겠다.
그러면 마음이 좀 가쁜해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