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일기'(55)

by 최화수 posted Dec 1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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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문수암 도봉 스님의 새 토굴(2)
                             (11월18일)

'예리한 칼날 위에서 하늘문을 여니
만고의 가을하늘 달빛 새롭네
장강의 파도는 하늘을 두드리나
물밑에 달그림자 선명하네.'
            <원담스님의 올해 '하안거 해제 법문'>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과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원담 스님의 법문집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가 얼마 전에 제자들에 의해 펴내졌다. 법전 종정은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 할 수 있는 그 마음에 바로 결제할 수 있는 마음"이라며 평소 수행자들에게 엄하게 공부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벼랑에서 손을 놓아버려야 그 자리에서 살길이 생기고, 일체의 집착을 놓아버릴 때 비로소 부처 그 자체, 심성 그 자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이는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고 가르쳤다. 춥고 배가 고파야 공부할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기한 발도심'! 그렇다, 문수암이 바로 그런 토굴이다. 해인사의 혜암 선사(나중에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으로 추대)가 젊은 시절 공부를 하기 위해 만든 토굴이 바로 문수암이다. 찬바람이 돌아 잠들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기한 발도심'의 바로 그 토굴인 것이다. 혜암 종정이 수제자 도봉 스님에게 문수암 토굴을 넘겨준 뜻도 '기한 발도심'으로 깨달음을 얻어라는 뜻에서였다.

문수암 뒤편에 천인굴이 있다. 이 암굴에서 찬바람이 뿜어져 나온다. 또 이 토굴은 끊임없이 냉기가 감돌아 지척거리의 더 높은 곳에 있는 상무주암의 따뜻함과도 구별된다. 겨울이 길고 밤이 빨리 찾아오는 곳이다. 찬바람이 잠을 깨워 끝없이 수행정진을 할 수 있게 하는 토굴이다. 도봉 스님이 이 토굴을 20여년 동안 지켜온 까닭도 찬바람을 맞으며 잠들지 않고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도봉 스님은 더 이상 찬바람을 맞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밖으로 드러내 말하지는 않았지만, 근년 들어 마침내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제 서서히 하산할 채비를 해야겠다"는 말도 했었다.
공부는 분심(忿心), 산을 뽑아버릴 듯한 분심을 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도봉 스님은 어느 사이 그 분심을 거두고 있는 듯하다.

"공부하기 위해 끊임없이 찬바람이 솟아나오는 토굴을 찾았는데, 이제 그 찬바람을 피해서 이 토굴을 떠나야 할 때가 된 모양이오. 나이가 들어 건강도 그렇고..."
도봉 스님은 '건강'을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진실은 토굴 공부에서 목표를 성취한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문수암 토굴을 열었던 혜암 종정은 생전에 문수암을 도봉 스님 앞으로 아주 등기이전까지 해주었다. 그러니까 이 토굴은 도봉 스님 개인의 재산인 것이다.
하지만 도봉 스님의 생각과 뜻은 전혀 달랐다.
"문수암은 해인사에 돌려주어야지요. 누구의 소유물일 수가 없지요."

도봉 스님은 겉으로는 나이가 들어 높은 산에서 생활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이는 문수암 토굴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을 얻은 것이 분명한 듯하다.
그래서 오랜 토굴 생활을 떠나 조용한 수행처로 옮겨가고자 하는 것이다.

"따뜻한 곳에 새로운 거소를 만들어 드려야 한다."
문수암을 찾는 몇몇 사람들 사이에 이런 말을 주고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말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 되고 말았다. 말은 쉬웠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는 것은 누구에게도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청암 골짜기에 땅을 마련했어요. 터고르기 작업이 끝나면 절집도 짓게 될 것이오."
도봉 스님은 그렇게 말하며 아주 기뻐했다.
"정말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성사가 됐는지, 그것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박 처사가 도와준 거요. 박 처사, 이 양반이 누구인고 하면..."

도봉 스님은 박 처사란 분과 함께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다.
스님은 그 사이 우리 집을 여러 차례 찾아왔었지만,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박 처사, 초로의 아주 차분한 인상인 '박 처사'가 지리산 청암골에 절터를 구하고 불사를 하게 된 전후 사정을 조용조용하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