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오두막 한 채를 꿈꾸다(6)

by 최화수 posted Sep 0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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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 달 뒤인 1983년 2월, 하필이면 그 해 겨울 중 가장 추운 날이었습니다. 하늘도 땅도 꽁꽁 얼어붙은 날씨에 부산을 떠난 이삿짐을 실은 작은 트럭 한 대가 쌍계사 앞을 지나 신흥마을에 닿았지요. 울퉁불퉁 비포장에 온통 빙판인 도로여서 운전사는 식은 땀을 흘렸답니다.

하지만 정말 가파르고 어려운 길은 그 신흥마을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목통마을로 오르는 산판도로로 가자는 말에 운전사가 펄쩍 뛰었답니다. "아무리 지리산 산골동네라지만, 이건 너무 하잖소. 누굴 죽일 작정이오?" 이삿짐 주인은 속으로 이렇게 외쳤대요. (죽기 아니면 살기지!)

이삿짐 주인은 물론 나의 그 선배였습니다. 한달 전 잠사 앞에 쓰러졌다가 의식을 찾은 그는 주민들에게 전후 사정을 얘기하여 방 한 칸을 얻게 됐답니다. 그래서 이날 아내와 6살, 4살, 2살짜리 세 남매를 데리고 이삿짐과 함께 목통마을 단간셋방으로 찾아드는 길이었습니다.

승강을 벌인 끝에 이삿짐을 실은 작은 트럭이 마을을 저만큼 남겨놓은 곳까지 어렵게 올라갔답니다. 목통마을 주민들은 부산에서 셋방살이 하러 지리산 산골마을로 찾아든 이 가족을 기이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도, 모두가 달려나와 이삿짐을 날라주고, 따뜻한 식사 대접까지 했습니다.

선배의 부인 역시 지리산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답니다. 무슨 대책도 없이, 나이 어린 세 남매, 심장판막증을 앓는 막내를 안고 그 추운날 못난 남편을 따라 한없이 깊은 지리산골로 찾아든 그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지구의 끝, 벼랑에서 떨어지는 듯한 절망감 뿐이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