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오두막 한 채를 꿈꾸다(44)

by 최화수 posted Sep 0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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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시루봉 오두막에 '우리들의 산' 현판을 내걸었던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지요. 언제 누가 무슨 힘으로 낡은 오두막을 수리할 것인지, 그 해법을 끝내 찾아내지 못했답니다. 그러고보니 혼자 힘으로 낡은 오두막을 고치고, 완벽하게 새집처럼 만들어놓은 이광전 내외분의 엄청난 노고가 능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지요.

어쩔 수 없이 그 오두막은 손을 보지도 않은 채 버려두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용할 산악회원은 그곳으로 찾아가기도 했지요. 여름철에는 그나마 막영도 하니까 그런대로 이용할 수 있었지만, 다른 철은 문제가 아닐 수 없었지요. 그보다 그 높은 곳으로 산행 목적이 아니면 찾고자 하는 이들이 별로 없는 것도 문제가 됐어요.

왕시루봉 오두막은 처음에는 무료 임대를 했는데, 좀 지나 관리비 등을 징수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별로 사용하지도 않는 그 오두막의 연간 관리비를 한 차례 내고는 결국 손을 떼고 말았어요. 사실 우리들 몇몇이 왕시루봉을 찾는 경우에도 보수관리를 잘한 이광전님의 광희장을 이용한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저러나 왕시루봉 일은 지리산 오두막 꿈에 대한 나의 허상(虛像)을 깨뜨려준 교훈적 사건(?)인 셈이지요. 지리산에 오두막을 갖는 것을 꿈꾸기는 쉽지만, 그 오두막을 관리 유지하는 일이 보통 문제일 수가 없다는 것을 절감했지요. 아주 지리산으로 들어가 살지 않고는 오두막 꿈은 꾸지 않는 게 좋을 것으로 판단됐지요.

왕시루봉 첫 한국인 입주자(?)로 기록된 이광전님도 몇해 가지 않아 결국 그 오두막을 포기하고 말더군요. 지리산 구석구석을 다녀야 할 그이가 오두막 때문에 오직 왕시루봉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도 부담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철수했지만, 지리산 사진작가 임소혁님 등이 그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