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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추억의지리산,사랑의지리산(최화수)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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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봉명산방 그리고 왕증장(3)

어제 부산을 출발할 때부터 나는 오른쪽 무릎 관절에 통증이 있어 평지에서도 바른 걸음을 걷지 못했었다. 무릎 관절통 때문에 언젠가 치밭목산장으로 오르다 심한 고통을 당한 경험이 있어 모처럼 나선 이번 산행이 크게 걱정되었다. 그러나 오솔길로 접어든 뒤부터는 관절 걱정보다는 우리 일행에 대한 정겨운 마음이 훨씬 앞섰다.

우리들은 간밤에 쌍계사 앞에서 묵었다. 원래는 어젯밤 야간산행으로 왕증장에 닿을 계획이었는데, 나의 고집으로 마을에서 민박을 했다. 나는 무릎 관절 이상으로, 상당 기간 산행을 중단했던 상태에서 야간산행을 제대로 해낼지 걱정이 앞섰다. 사실은 그보다 모처럼 함께 산행에 나선 일행과 마음놓고 술잔부터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일행 가운데 L 선생은 가정주부로서 그의 지리산 종주산행기가 나에게 '잃어버린 지리산'을 되찾게 해주었을 만큼 큰 감명을 안겨주었다. 그 글은 내가 <우리들의 산> 책자를 다시 만들고, 또 지리산행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이번 산행에서 처음 만나본 그녀는 그 명징한 글과 똑같은 모습이어서 감동적이었다.

현역 공군 장교 정 중위는 여승익군과 함께 풋풋한 젊음, 다감한 인상이 신록의 숲과 잘 어울렸다. 그림을 그리는 우 선생, 국어를 가르치는 장 선생, 그리고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는 정 선생, 권 선생 등 일행은 한결같이 지성과 덕성에다 미모까지 고루 갖춘 선남선녀들이었다. 이들과 함께 지리산 산행을 하게 된 것을 나는 기뻐했다.

이번 지리산행에 나선 우리들의 대표 격인 이광전 선생은 발걸음이 빠른 여승익군과 김애란양을 먼저 왕증장으로 올려보내 식사 준비를 하게 했다. 김양은 내가 한창 산을 다닐 때 나에게 마치 '수행비서'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었다. 하지만 오늘은 한 사람의 총각을 따라가는 한 명의 당당한 처녀로서 나의 시야에서 잽싸게 사라졌다.

키가 크고 날씬한 몸매의 정 선생도 어느 사이 선두를 뒤쫓아가느라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몇 차례 휴식을 한 끝에 왕시루봉까지의 거리를 절반 가량 남겨두었을 때부터 서서히 지난날의 산행 기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찌근덕거리던 무릎 관절의 통증도 어느 사이 사라지고, 나의 혈관에 어느 사이 지리산 정기가 흐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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