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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추억의지리산,사랑의지리산(최화수)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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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봉명산방 그리고 왕증장(5)

내가 쌍계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깜깜한 어둠이 내려 덮인 늦은 시각이었다. 사찰 입구인 그 집에 찾아들자, 할머니도 어쩐지 신혼여행 때의 할머니 같지 않고, 음식도 그 때 음식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밤새 옆방에서 수군수군하는 얘기 소리에다 라디오 소리까지 들려 내 가슴은 따뜻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차가와지기만 할 따름이었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인심도 변해가구나...하는 절망감만 한겹 더 내게 감겨와, 먼 길을 달려오며 따뜻한 것만 생각한 것이 오히려 허탈하게 생각되었다. 그날 밤의 나의 고독은 한층 참담한 것이었고, 사람의 소리가 들리는 곳이라면 어디인들 살 곳이 못 되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럴수록 나는 불일폭포 생각이 간절하였다.

나는 다음날 첫새벽 같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보니 놀랍게도 천지가 하얀 설국으로 변해 있었다. 어제 오후 그처럼 잔뜩 내려앉았던 하늘에서 밤새 소리도 없이 많은 눈을 쏟아내린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배낭을 둘쳐메고 쌍계별장을 나섰다. 아직도 세상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오직 하얀 설국의 은세계만이 열려 있었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로 오르는 산길에 쌓인 하얀 눈 위에는 산짐승들의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나는 그들 산짐승들과 함께 걷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언제나 시끄러운 등산로가 사람이 없으니 그렇게 조용하고 정겨울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눈길을 걸어오르는 것이 즐거워 단숨에 폭포 앞 불일평전 초막에 도착했던 것이다.

초막 앞에는 나무의자들이 하얀 눈을 덮어 쓰고 있었고, 개 한 마리가 뛰어나와 나를 향해 컹컹 짖어댔다. 나는 그 이른 아침 시간에 단잠에 빠져 있을지도 모를 중년 내외를 불러낼 엄두가 나지 않아 배낭만 거기에 벗어둔 채 불일폭포 쪽으로 갔다. 거대한 불일폭포는 전체가 얼음덩어리가 된 채 죽음보다도 더 깊은 적막 속에 빠져 있었다.

폭포로 내려가는 길도, 폭포의 바닥도, 좌우의 언덕도 얼음이나 눈에 덮여 숨소리 하나 내지 아니했다. 다시 되돌아올라 불일암자로 들어가 보았다. 초라한 이 암자 역시 얼어붙어 있었다. 집도 마당도 샘터도 전체가 얼음이었고, 내가 일부러 그 좁은 방문 앞의 마당을 몇 차례나 왔다갔다 했지만, 끝내 암자의 굳은 방문은 열리지를 아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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