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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추억의지리산,사랑의지리산(최화수)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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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봉명산방 그리고 왕증장(10)

함태식 선생은 산아랫 마을에서 사들고 올라온 '보해(寶海)' 소주 1.5리터 짜리가 왕시루봉 왕증장에 이르면 어느새 '무애주(無碍酒)'로 탈속한다고 말한다. 그이가 무애인과 무애주를 노래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지리산에서 20여년을 살아온 그이의 에너지 원천은 어쩌면 거리낌없는 삶, 그 자유에의 희구에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는 소주가 산위로 올라오는 동안 탈속이 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거리낌없이 살려고 해, 무애인, 그냥 그런 분위기를 느껴. 일제(一體)는 유심조(有心造)라고, 모두 마음 먹기에 달렸지. 이 무애주를 먹으면 아무런 생각도 없어진다구." 지리산속에 홀로 살고 있는 이들은 제마다 나름대로 자연과의 합일을 위한 삶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왕증장 주변의 청록빛 숲 아래는 놀랍도록 부드러운 풀밭이 마치 빌로드를 펼쳐놓은 것처럼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 넒은 풀밭 한 곳에 '개불알꽃' 한 송이가 아주 묵직한 불알을 홀랑 내밀고는 나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하필이면 그 야생화는 그 넓은 풀밭에 홀로, 어쩌면 그렇게 혼자 서 있는 것일까?

개불알꽃은 어쩌면 자신의 무거운 불알을 발랑 까내놓고 자랑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제대로 깨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것은 내가 함태식 선생이나 변규화 선생처럼 홀로 깊은 지리산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일도출생사 일절무애인(一道出生死 一切無碍人)'의 경지를 깨치지 못하는 것이나 같았다.

나는 다만 풀장의 나무 자지와 풀밭의 개불알꽃, 그리고 함 선생과 "캬아!" "캬아!" 하고 마신 보해소주에서 지리산속에 혼자 살고 있는 사람의 어떤 정서를 느낄 듯 말 듯도 했다. 우리들은 함 선생과의 짧은 만남을 아쉬움으로 접고, 다시 지리산을 등지고 도회지로 떠나야 할 시각이 되었다. 일행 가운데 절반 가량은 이미 먼저 떠난 뒤였다.

이광전 선생과 나는 차마 헤어지는 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아 한동안 머뭇거리던 끝에 작별인사를 했다. 함 선생은 작별 인사를 받고도, 자꾸만 우리들을 뒤따라 왔다. 산모퉁이를 돌아 산아래로 길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개활지에서 비로소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우리들의 멀어지는 모습을 장승처럼 꼿꼿이 선 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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