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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추억의지리산,사랑의지리산(최화수)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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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5미터 사이에 끼어든 '사랑'(1)

5미터 뒤는 어김없이 그녀의 자리였다. 빨리 걸어가면 빨리 걸어가는대로, 천천히 걸어가면 천천히 걸어가는대로, 그 5미터의 간격은 좁혀지지도 늘어나지도 않았다. 한창 지리산을 찾아다닐 때의 1년여 기간 동안 나에게는 이 5미터 뒤의 그림자가 있었다. 나의 5미터 뒤에 어김없이 자리하는 그녀!? 그녀는 과연 누구였을까?

여기까지 얘기하면 또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 인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20대 중반의 나이보다 훨씬 앳된, 마치 소녀와 같은 천진한 아가씨였다. 엄연히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었지만, 나에게는 이상하게도 그저 고등학생 정도로만 생각이 되는 것이었다. 여학생보다 더 착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었다.

어느날부터 우리들의 산 산악회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첫날부터 나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내가 좋아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것은 물론 아니었다. 너무 얌전하여 아무와도 말을 못하는 그녀이고 보니 집행부 일을 보던 나를 따라다닌 것이었다. 5미터 간격을 지켰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무슨 말을 건네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처음 산행에 나선 그녀는 두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처럼 보였는데, 천만에, 그 뒤로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주말산행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산길을 걸을 때만이 아니라 식사를 할 때도 나와 5미터 거리를 유지한 채 혼자서 도시락을 먹었다. 사람들은 5미터를 유지하는 그녀를 나의 '비서'라고 부르기도 했다.

5미터 뒤의 그녀, 한번도 두번도 아니고 번번이 그러는 그녀가 나에게는 적지않은 부담으로 생각됐다. 다른 사람들은 '비서' 어쩌구 했지만, 이상한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은근히 두렵기도 했다. 나는 일부러 그녀를 떼놓고자 길 아닌 길을 들어서기도 하고, 하루종일 아무 말 한 마디 하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왕시루봉에서 하산할 때였다. 갑자기 등뒤가 써늘한 느낌이 들었다. 뒤돌아보니, 아 놀랍게도 5미터 뒤의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무 예고도 없는 이 돌발사태에 처음으로 크게 당혹했다. 한동안이나 멍하게 서있으려니 철쭉꽃밭에서 그녀와 산총각이 함께 걸어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5미터 사이에 사랑이 끼어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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