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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추억의지리산,사랑의지리산(최화수)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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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호랑이 담배 피던' 종주산행(3)

우리들의 단체 지리산 종주 첫날밤은 언제나 여유와 낭만이 넘쳤다. 부산에서 오후에 대절버스로 출발, 해질 무렵에 화엄사에 도착하여 여관촌에서 일박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여관촌은 현재의 '시의 동산'이 있는 자리로 버스종점과 상가도 함께 있었다. 여관집들은 감나무 아래 평상을 내놓는 등 시골집과 같은 분위기였다.

화엄사계곡의 물소리도 청량한 여관촌에서의 첫날 밤은 단체 유흥시간으로 즐겼다. 큰방에 함께 둘러앉아 차례로 자기소개와 특기 자랑을 하고는 했다. 술과 음식도 들면서 마음놓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이 때까지는 참가자 누구나 이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신사숙녀들이었다. 짜증내거나 신경쓸 일이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종주산행이 시작되면 상황이 아주 달라졌다. 한여름철에 무거운 짐이 가득 들어있는 배낭을 메고 노고단으로 오르는 것부터 힘에 벅찬 노릇이다. 또 막영지에서 비좁은 텐트에 끼워 잠자는 것이나, 샘터에 가서 물을 받아오는 등등 모두가 힘들 수밖에 없다. 평소에 점잖은 이도 악조건에 놓이면 본색을 드러내는 법이다.

기사도 정신이 앞설 것 같던 청년이 자꾸만 꽁무니를 빼거나, 상냥하고 친절한 아가씨가 앙칼지거나 표독스런 성격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첫번째 종주에 나섰던 때, 여관촌에서 "텔레비전에 내가 나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란 노래를 깜찍한 율동과 함께 선보여 최고의 갈채를 받은 K양도 산행에 나서자 딴사람이었다.

약간 밉상스런 얼굴의 그녀는 어찌 된 셈인지 기저귀 가방만한 배낭 하나만을 달랑달랑 메고 가는 것이었다. 노고단을 지난 뒤로는 부채를 들고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갔다. 가만 보니 취사를 할 때도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하는 일이라고는 휴식을 할 때마다 자기 얼굴을 다듬고 화장품을 찍어바르는 게 고작이었다.

조장도 K양은 감당이 불감당이라 했다. 보다 못한 내가 한마디 쏘아주었다.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데 얼굴에 뭘 자꾸 찍어바르지?" 나는 아차 했다. 너무 심한 말을 했으니! 하지만 그녀는 뜻밖의 대꾸를 했다. "호박에 줄이 그어져야 수박이 되지요!" 폭소가 터졌다. 그녀는 재치 하나로 지리산 종주에 나선 아주 특이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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