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88)

by 최화수 posted Jan 1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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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이거 정말 기적입니다!"(5)

한신계곡 코스는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그 돌투성이 길을 나는 두 손과 한쪽 다리로 내려와야 했다. 그 모양이 얼마나 우스웠겠는가? 우리 일행은 놀라움이 앞서 차마 웃음을 지을 엄두도 나지 않았겠지만, 점차 얼마나 기가 막혔겠는가. 우리가 다른 누구의 무엇을 보고 웃기도 하지만, 함부로 그럴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무척 우스꽝스런 모습이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일행에게 크게 뒤처지지 않고 하산 속도를 낼 수 있는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인가 보았다. 나는 두 손과 한 발로 걷는, 원숭이도 사람도 아닌 이상한 걸음걸이로 내려가고 있었지만 부끄러운 줄을 전혀 몰랐다. 시간 지체는 안 된다는 오직 그 일념 뿐이었다.

자연 마취라는 것도 있는 것일까? 그렇게 격렬하던 다리 통증이 점차 수그러드는 것이었다. 통증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비로소 심호흡을 할 수가 있었다. 일행은 나의 상처를 걱정하면서 중간중간 쉬어가자는 제의를 했지만, 나는 여전히 죽을판 살판 하산을 서둘렀다. 시간이 지체돼 욕먹는 게 걱정이 됐다.

숨을 돌리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아찔했다....사람의 운명도 목숨도 순간인 것을! 순간이 이승과 저승을 갈라놓는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 사고로 만일 내가 저승에라도 갔다면 그곳에 누군가가 돌비석 하나를 세워주기라도 할 것인가?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마음이 어지럽혀지고는 했다.

하기는 돌비석이 세워져본들 무엇 하겠는가? 죽음은 그저 허무의 세계인 것을! 풍상을 맞고 자리를 지켜야 할 돌비석의 운명이 더 쓸쓸하고 안쓰러운 것이 아니겠는가. 한신계곡의 긴 내리막길을 걸어내려오면서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씁쓸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산길만은 서두르고 서둘렀다.

나는 정말 어지간히 하산길을 서둘렀는가 보았다. 그것은 백무동을 겨우 1㎞ 남겨놓은 지점에서 구조대와 마주친 사실이 설명해준다. 그것은 구조 요청을 하러 뛰어간 청년과 큰 거리 차이가 없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나의 부상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스러워 했다. 시간 지체를 탓하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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