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9)

by 최화수 posted Sep 0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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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쌍계별장의 할머니(4)

1980년 12월의 두번째 만남이 쌍계별장 할머니와의 마지막 해후나 다름이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도 할머니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할머니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난 것은 결코 아니다. 쌍계별장 할머니는 지금도 쌍계별장이 있는 용강마을에서 살고 있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마을로 거처를 옮긴 뒤로는 얼굴을 보지 못한다.

내가 쌍계별장 할머니의 진면목을 알게 된 것은 다시 10년이 지난 1990년께였다. 그 때는 할머니가 이미 별장을 떠나 사하촌 가정집으로 옮겨 살고 있을 때였다. 쌍계별장은 할머니 대신 아들에게 관리를 맡겨놓았다. 할머니 아들인 윤석천 부부가 지금까지 할머니가 쌍계별장을 꾸려가던 뜻을 그대로 살려 아름답게 지켜가고 있다.

쌍계별장은 할머니의 아들 내외가 맡게 되면서 식사 제공을 하지 않는다. 시대적 분위기도 달라지고 손수 취사를 해먹는 이들이 늘어난 까닭도 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은 현재의 윤석천 부인이 할머니의 인자한 모습을 그대로 닮고 있다는 것이다. 사철 어느 때고 차실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도 옛날 그대로이다.

할머니가 쌍계별장을 맡게 된 경위와 그 과정에 얽힌 감동적인 얘기를 나는 <지리산 365일>이란 책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글로 썼다. '지리산 통신' 칼럼에도 다시 한번 소개한 바가 있다. 따라서 여기선 그 얘기를 또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는 할머니와 첫 대면 14년 후에 그런 사정을 알게 됐던 것이 부끄럽기 짝이없다.

쌍계별장 할머니가 왜 도회지 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 깊은 곳으로 찾아들어 쌍계별장을 열어 가정집같은 아름다운 인정을 베풀었는가를 나는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나는 지리산을 찾는 자세가 달라졌을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깨달음도 없이 지리산을 찾는 우를 되풀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 쌍계별장 할머니 뿐이겠는가! 나는 지리산을 찾으면서 아주 소중한 사물도 소중한 줄 모르고, 참으로 값진 사연도 값진 것인지도 모르고 다니기만 했었다. 두 눈을 뜨고, 두 귀를 열어놓고도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덧없이 보낸 십수년 세월이 지금 생각하면 정녕 안타깝고 민망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