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12)

by 최화수 posted Sep 0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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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월도 비껴가는 '봉명선인(鳳鳴仙人)'

불일평전 불일휴게소에서 20년 동안 사람들이 의자삼아 걸터앉고는 하던 통나무가 있었다. 귀목나무로 원래 바둑판을 만들려고 했으나 도끼날이 부러질 만큼 너무 단단하여 그냥 버려두었던 것이다. 한 젊은이가 1년 동안 이 나무를 쪼아 실물 크기의 한 도인을 새겨냈다. 이름하여 '봉명선인(鳳鳴仙人)'이다.(칼럼 제117호 참조)

지난해 불일평전 변규화님이 이 '봉명선인'의 얘기를 들려주는 사이 나는 그 어떤 '불가사의'를 느꼈다. 봉명선인 조각상이 변규화님을 너무나 빼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변규화님은 20년 전의 그 모습에서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나이를 먹지 않는 변규화님이야말로 정녕 신선(神仙)이 아닐까 하고 생각됐다.

80년 12월 불일암의 검정고무신 두 켤레를 본 그 날로 다시 되돌아간다. 나는 불일평전 오두막 앞으로 돌아나와 한동안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방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나는 몇 차례 헛기침을 했다. 이윽고 수염을 기른 '노인 아닌 노인(?)'이 오두막에서 나왔다. 이른 아침 눈 덮인 불일평전에서 그림같은(?) 첫만남이 이뤄졌다.

그날 그 시각 그 곳에는 변규화님과 나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돌팍 위에 갈근차 한 잔씩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회사 동료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불로주(不老酒)' 몇 병을 사들고 그이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반시간 이상 단독대면이었으므로 변규화님과의 첫 만남은 지금까지도 기억이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얘기하며, 부드러운 웃음하며, 해박한 지식하며...변규화님에게는 산에서 사는 사람 특유의 체취가 풍겼다. 그로부터 나는 한 해에도 몇 차례씩 불일평전을 찾게 됐고, 그곳에 갈 때마다 그이와 마음을 열어놓고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뿐만아니라 그이가 부산까지 나들이를 나와 만났던 것도 꽤나 된다.

그런데 '봉명선인' 조각상을 보고 깨달은 것이지만, 참으로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변규화님의 모습은 80년 그 때나,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불일평전 '불로주'의 맛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듯이 그이는 나이를 결코 먹지 않는 모양이다. 지리산의 불가사의를 변규화님으로부터도 절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