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53)

by 최화수 posted Sep 0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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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그 해 여름은 '꿈결'이던가?(2)

'여름 소설학교'는 7월28일부터 30일까지 의신마을 의장인 우정용씨 집에서 열기로 돼 있었다. 참가자는 주최측이 마련한 대절버스 2대에 나눠타고 찾게 돼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미모의 여성을 동반해야 했으므로 하루 먼저 나의 차량으로 출발했다. 자신을 지리산으로 데려가 달라는 여성, 그녀는 어디로 간들 상관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의식세계는 그놈의 '여름 소설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소설학교는 해마다 참가하는 것도 아니었고, 참가를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때 왜 소설학교가 열리는 의신마을과 멀리 떨어진 달궁이나 와운마을 등 먼 곳으로 그녀를 데려가지 못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소설학교 일행보다 하루 먼저 출발했지만, 내가 찾아간 곳은 소설학교가 열리는 의신마을이었다. 나는 차마 소설학교 학생들이 묵게 되는 우정용씨집의 방을 얻을 수는 없어 바로 이웃한 조봉문씨 집으로 갔다. 그 무렵 벽소령에서 한때 상주천막을 쳐놓고 등산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던 조봉문 청년과 나는 자주 어울리곤 했다.

조봉문은 힘이 천하장사요, 두사불사의 술꾼이었다. 그는 의신마을에서 벽소령까지 막걸리 한 말은 등에 메고, 또 한 말은 손에 들고 오를 정도로 힘이 센 건장한 청년이었다. 내가 찾아가자 그의 눈이 똥그랗게 변하는 것이었다. 조봉문은 나를 보고 놀란 것이 결코 아니었다. 내가 데리고 간 미모의 젊은 여성에 넋을 빼앗긴 것이다.

"이 집에는 손님한테 술도 한 잔 주지 않나?"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그는 머리를 긁적긁적거리며 아래채 가게로 걸어갔다. 미인 앞에 제정신이 아닌 것은 남정네들이란 다 마찬가지였다. 그는 막걸리에 맥주에 과자 따위를 수북하게 받쳐들고 왔다. 막걸리는 나에게, 맥주는 그녀에게 따랐다. "여기 제일 깨끗한 방, 이 분에게..."

나는 그녀를 조봉문에게 맡겨놓고 우정용씨집으로 갔다. "내일 90명이나 찾아 오는데, 제대로 준비가 돼 있는지 모르겠소!" 소설학교 장소 선정을 의뢰해 왔으므로 내가 이 집을 택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준비상황을 점검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사실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두려워 괜히 우정용씨집에서 뭉기적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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