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59)

by 최화수 posted Sep 0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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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더덕'에 대한 두 가지의 기억

지리산은 일찌기 진시황이 불로장생의 영약을 찾아 삼천동자를 보냈다는 전설이 전해올 만큼 영약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무엇이 영약인지 잘 모른다. 고작 오미자, 더덕 정도만 알고 있을 따름이다. 더덕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강렬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에 더욱 쉽게 알 수 있다. 이 더덕과 관련한 두 가지 일을 잊지 못한다.

89년인가, 90년인가 영신대를 처음 찾았을 때였다. 당시 '지리산 365일' 신문 연재로 그곳을 찾게 됐는데, 의신마을 정근수, 정영훈이 길 안내를 맡았다. 하지만 앞날 저녁 조봉문 등과 함께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아침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까 저녁밥, 아침밥도 먹지 않은 채 술기운으로 그 멀고 험한 길에 나선 것이다.

대성폭포 위에서 나는 갑자기 허기를 느꼈다. 온몸에서 힘이 쫘악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영신대에 닿으려면 아직 나바론 요새와도 같은 비탈길이 남아있는 것도 물론 모르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정영훈이 나에게 더덕 한 뿌리를 캐서 건네주었다. 나는 그 더덕 한 뿌리의 힘으로 나바론 요새의 그 험한 비탈길을 기어오를 수 있었다.

영신대에서 세석산장으로 갈 때는 정말 죽을 고통을 맛보았다. 배낭 하나 메지 않고, 먹을 것 하나 없이 무모하게 나섰으니, 대성골에서 정영훈이 더덕 한 뿌리마저 건네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일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아찔할 정도이다. 야생 더덕 한 뿌리의 감동에 대해 나는 지리산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들려주었다.

한번은 지리산 목통마을의 한 지인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당신이 감동한 야생 더덕을 많이 구해놓았다"는 전갈이었다. 나는  더덕에게 입었던 은혜를 되새길겸 목통마을로 달려갔다. 물론 비싼 돈을 지불하고 그 야생 더덕을 구이안주로 하여 질펀하게 술을 마셨다. 야생 더덕을 마당에 파묻어 놓고 기다려준 그에게 감사했다.

나는 야생 더덕과 밭 재배 더덕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 뒤 쌍계사 앞 석문광장에서 더덕구이를 먹게 되었다. 목통에서의 그것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그걸 물어본 게 화근이었다. 목통 그 사람, 재배 더덕을 구입하여 마당에 묻어두고 야생 더덕이라 한다지 않겠는가. 믿은 도끼에 발등 찍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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