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86)

by 최화수 posted Jan 07, 200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41> "이거 정말 기적입니다!"(3)

바위 아래로 뛰어내리던 나는 무심코 나뭇가지를 한 팔로 잡고 거기에 체중을 내맡겼었다. 그 나뭇가지는 폭싹 썩어 있었고, 나는 아차 할 겨를도 없이 허공으로 떴다가 거꾸로 처박힌 것이다. 아, 그리고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순간에 정지가 되었고, 지리산의 두터운 적막감만이 감싸고 있는 것이엇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가 다가와서 나의 머리를 앞 뒤로 살펴보고 가슴에도 손을 얹어보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절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동안 멍한 채 넋을 놓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머리가 괜찮습니까요?" 다급하게 묻는 사람은 일행 중의 한 남자였다. 그는 그렇게 물으면서 자꾸만 나의 머리를 앞과 뒤, 눈동자까지도 살펴보는 것이었다.

나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그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누군가가 저만큼 날아가 있는 나의 안경을 찾아주었다. "정말 괜찮습니까?" "...글쎄, 괜찮은 것 같은 데요!" 그러자 그 사나이가 휴우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아, 기적입니다, 기적! 난 최선생이 죽은 것으로 생각했어요. 이거 정말 기적입니다. 죽지 않았다면 기적이라구요!"

그이가 결코 엄살이 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내가 거꾸로 쳐박힌 주위를 둘러보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이거 보세요. 칼날처럼 뾰족뾰족한 돌 틈에 머리를 거꾸로 처박은 채 중심을 잃고 굴러 떨어졌거던요. 하이구, 난 그 순간 최선생이 죽었구나 하고...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오. 그런데 살아있다니, 이거 정말 기적이구만, 기적!"

그 사람 뿐만 아니었다. 나머지 일행도 한결같이 놀란 얼굴로 나를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얼굴에 겨우 안도하는 빛이 되살려졌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이었다. 돌틈에 손을 딛고 일어서려던 나의 입에서 "아이쿠쿠!!!" 하는 비명이 쏟아졌다. 왼쪽 허벅지 근육에서 심한 통증을 느꼈고, 왼쪽발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참으로 기막힌 사실은 그 때 발견이 되었다. 산악회 총무였던 나는 산행회비를 받아 가죽지갑에 넣어두었다. 그 가죽지갑은 반으로 접힌 채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반으로 접혀 두툼한 그 지갑 한가운데를 칼날같은 돌이 정확하게 금을 그어놓았다. 그 지갑이 완충 역할을 해주는 바람에 나는 다리뼈의 보호를 받았던 것이다.
  

Articles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