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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추억의지리산,사랑의지리산(최화수)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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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봉명산방 그리고 왕증장(8)

왕시루봉 외국인 선교사 수양관의 관리동 현판이 '왕증장'이다. 그곳의 함 선생은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는 우리들을 기쁜 마음으로 맞아주었다. 나 또한 그가 피아골산장 때보다 훨씬 더 밝은 표정을 지니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정녕 기뻐했다. 함 선생은 길쭉한 막대기 끝에 매단 쪽박을 꺼내들고는 나더러 빨리 따라오라고 했다.

바로 뒤편 풀장에는 '人'자 형상의 나무를 세워놓고 가운데 나무로 다듬은 '자지'를 매달아놓았다. 거기에다 파이프를 연결하여 풀장으로 흘러드는 물이 자지가 오줌을 싸서 떨어지는 것과 똑같이 해두었다. 함 선생은 막대 끝의 쪽박을 내밀어 나무 자지 끝에서 떨어지는 오줌이 아닌, 샘물을 받아선 나에게 건네주며 마시라고 했다.

그 물은 무척이나 달고 시원했다. 그보다 나는 그 물이 흘러나오는 나무 자지의 아주 리얼한 모양 때문에 킬킬 새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어때, 피로가 싹 가시지?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한 사람의 피로를 씻어주고자 내가 저 나무 자지를 만들었지. 다음에 올 때는 더 큰 것으로 갈아끼워 놓을 테니까...힛힛...!" "...헛헛...!"

함 선생은 호쾌하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재미있기도 하고, 좀은 민망하기도 하여 헛웃음만 흘렸다. 함 선생은 나의 생각 따위는 전혀 개의할 바 없다는 듯이 더 큰 소리로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저 자지가 색을 쓴단 말이야. 어디 한번 보라구! 나무 자지가 색을 쓰면 물줄기가 힘을 얻어 멀리 뻗어나간다는 말씀이야!" "과연!"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풀장으로 흘러드는 물의 수원은 숲속 어딘가에서 솟아나온다고 했다(왕증장 일대에는 계곡이 없다). 그 물이 나무 자지를 통해 풀장으로 흘러드는 유입량은 시시각각으로 달랐다. 유입량이 많아질 때에는 자지 안의 구멍에서 압력을 받아 멀리 뻗어나갈 힘을 얻도록 묘한 조절장치를 해놓은 것이었다.

함 선생이 이곳 왕증장 숲속에서 홀로 조용한 자연세계의 자연인으로 생활하면서 나무 자지를 깎아 달고, 파이프를 연결해 놓고 "색쓴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나는 문득 화가 이중섭(李重燮)의 그림이 생각났다. 피난 이래 부산과 충무, 제주에서 게들과 어울렸던 그의 천진난만한 동심세계가 함 선생에게 옮겨져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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