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99)

by 최화수 posted Jan 3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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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봉명산방 그리고 왕증장(11)


왕시루봉에서 한동안 걸어 내려오던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함 선생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장승처럼 꼿꼿이 선 채로 멀어져가는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들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자 그도 우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런 손흔들기가 몇 차례나 되풀이 되었다. 나는 그를 지켜보다 그만 코끝이 찡해왔다.

내가 노고단산장에서 처음 그를 만났던 10년 전의 일이 문득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때 그는 그 넓은 노고단을 가득 메운 야영객들을 추상같은 호통 한 마디로 일시에 숨을 죽이게 했는가 하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등산객에게 벼락치는 소리로 꾸중을 하곤 했었다. 그이는 아무도 못 말리는 '노고단의 호랑이'였었다.

원래 나는 산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나 산장(대피소)에서 묵게 될 때도 관리인과 말을 잘 나누지 않는 편이다. 노고단산장 관리인 함태식 선생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게 된 것도 지난 1985년 회사(당시는 부산일보)에서 취재 출장을 간 때문에 이루어졌다. 그 몇 해 전부터 나는 그의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인사는 그 때 처음 나눴다.

당시 나는 사진기자와 함께 산장 휴게실에 무심코 들어섰다. 순간 수염을 잔뜩 기른 깡마른 모습의 함 선생이 벼락치는 듯한 소리를 내질렀다. "담배불 끄고 들어와! 밖에서 끄고 들어오란 말이야!" 나는 깜짝 놀랐다. 담배를 물고 산장 안으로 들어서던 이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놀라기는 그 사람보다 나쪽이 더 놀랐다.

늘상 담배를 물고 다니던 내가 그 순간 용케도 담배를 물고 있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긴 했지만, 나에게 호통을 치는 줄로 알고 놀랐던 것이다. 함 선생과 한 시간 가량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가 "담배불" 어쩌고 하며 벼락치듯 고함을 내지르던 것은 서곡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거의 쉴새없다시피 고함을 지르곤 했다.

그는 날이 갈수록 오염되고 병들어가는 노고단을 자연의 원상 그대로 보존하고 복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신명을 바친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노고단을 어지럽히는 사람에게는 누구를 가릴 것 없이 그는 날카롭고 준열하게 꾸짖었다. 노고단에 오르는 등산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는 두 눈을 부럽뜨고 감시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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