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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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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태식님이 16년이나 지켜온 노고단산장에서 밀려나 피아골대피소로 하산(?)한 것은 1987년 11월13일이었어요. 노고단에 3억여원의 많은 돈을 들여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영의 현대식 3층 산장이 88년 1월9일 준공되는 때문이었지요. 그러니까 관리공단 직영의 현대식 새 산장 개관에 걸림돌로 생각된 구 산장 관리인의 등을 먼저 떼밀어 피아골로 내려보낸 게지요.

그이가 1972년 노고단산장 관리인을 자청하고 나섰을 때 산장 안에는 구례군 산동면 사람 이종기 노인이 부인과 함께 장사를 하면서 옹색하게 연명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종기 노인은 처음에는 옛 선교사 별장지기인 윤석만의 집이 허물어지자 그 터에 자리를 잡고 사탕, 소주, 음료 등을 갖다놓고 장사를 했답니다. 71년 무인산장이 들어서자 이 노인은 그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계속했다는 거에요.

함태식님은 이종기 노인에게 이번에 산장 관리인으로 임명되어 왔으니까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종기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는 군요.
"할 수 없는 일이제. 그나저나 자네만 괜찮다면 단풍이나 구경하고 내려갔으면 좋겠네."
당시의 상황을 함태식님은 자신의 책 <단 한번이라도 이곳을 거쳐간 사람이라면>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가을 장사나 하고 내려가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쾌히 승낙하고 산장 내부를 고치는 일에 착수했다. 우선 오물부터 쓸어내고, 쓸만한 나무를 덧대어 침상을 손질했다. 거미줄을 걷어내고 벽칠을 다시 했다. 깨어진 유리창을 갈아끼우고 방충망도 설치했다. 주객이 바뀌어서 이종기씨는 매점 온돌방에서, 관리인인 나는 산장 마루방에서 생활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함태식님은 나이 마흔다섯에 가족을 남겨놓고 단신 노고단으로 올라와서 산장 관리인 생활을 이렇게 시작한 것입니다.
"노고단의 하루하루는 그지없이 상쾌했다. 온 몸을 씻어내리는 아침의 청명한 대기와 서쪽 차일봉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주황빛으로 가라앉는 해질녘의 석양도 숨막히게 아름다웠다."

1972년 가을을 그렇게 보내고, 서리가 얼어붙어 발밑에서 오도독오도독 바수어지던 그 해 11월 초순이었답니다. 이미 손님의 발길도 뜸해진 노고단은 초겨울의 을씨년스런 느낌이 더해가고 있었다는 군요. 이종기 노인은 노고단산장 새 관리인 함태식님에게 떼밀려(?) 노고단에서 하산해야만 했습니다.
함태식님은 그 순간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래도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는데, 그가 막상 떠난다고 하니 섭섭함과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나는 이 노인이 팔다남은 소주며 까스명수를 인수하고 10만원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종기 노인은 "이젠 다시 이 장사를 못하것제. 봄이 되면 놀러나 옴세. 그간에 고마 웠네"란 말을 남기고 노고단을 떠나갔다고 합니다.

함태식님은 자신이 노고단산장의 관리인이 됨으로써 먼저 와 있던 이종기 노인을 산아래로 그만 떠나보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게 몹시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그것은 그의 다음과 같은 글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는 그렇게 떠났다. 산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괜시리 마음이 아렸다. 그가 담가주던 술맛이 아직도 혀끝에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해서 나만의 고독한 산생활은 유신헌법이 발효된 그 해 초겨울부터 시작되었다.'

(섬진강보존회회장 우두성님의 증언에 따르면 노고단산장은 건립 당시 구례 연하반산악회(회장 우종수)가 관리했고, 연하반산악회가 이종기 노인을 초대 관리인으로 임명했으며, 다음해 함태식님에게 관리를 권유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6년 후, 함태식님이 이종기 노인처럼 노고단에서 등을 떼밀려 피아골대피소로 하산하게 됩니다.
함태식님의 심정은 이종기 노인의 착잡했을 마음으로도 짐작해볼 수 있겠지요.

함태식님은 그대로 물러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진정서를 보내는 등 나름대로 자구책을 모색해보기도 했다네요.
하지만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채, 냉기 가득한 피아골대피소로 옮겨야 했었지요.

함태식님이 그 참담한 마음을 떨쳐내고 마음에 환한 등불을 얻은 곳이 바로 왕시루봉 외국인 선교사 수양촌입니다.
왕시루봉의 그이는 '노고단의 호랑이'도 아니었고, 피아골 대피소의 '인사불성'의 딱한 모습(?)도 물론 아니었습니다. 그이는 마치 '동화 세계의 소년'처럼 천진난만한 원래의 천성을 되찾은 듯, 너무너무 밝은 모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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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 2004.02.26 17:00
    함선생님은 ,
    40대에 지리산에 들어서서 喜壽가 되도록
    오직 지리사랑의 아름다운 계몽을 하고계시는군요. 연로하신데다가 즐기시는 약주때문에 작년에는 구례병원에 입원도 하셨다는데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 궁금하군요.
  • ?
    허허바다 2004.02.26 18:35
    1987년 초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같은 계열의 신설회사로 옮기기전 노고단에 올라 산아래를 내려다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던 때... 그 뒤 한 5개월 뒤에 거처를 옮기셨군요... 1990년 아픈 허리 탓에 차로 성삼재에 올라 다 지어진 지금의 콘크리트 산장을 보게 되었을 때... 너무나 어색한 광경이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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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거사 2004.02.27 22:37
    함태식님 만나려 왕시루봉 한번 가보고 싶지만,그 높은데를 어떻게 올라갑니까?성락건님이 준 지리산 지도 한참 찾아보니 토지에서 10K니...
    거북이는 한 10시간 걸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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