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파고 씨 뿌린 일 죄가 되는가"(2)

by 최화수 posted Sep 2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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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함양사건 추모공원'은 양지 바른 곳에 자리합니다.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드넓은 부지에 합동묘역과 추모 조형물 등이 들어서 있지요.
2001년 12월13일 합동묘역 조성사업 착공 이후 4년에 걸친 공사 끝에 사실상 준공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어요.

하지만 아직 준공식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어째서일까요?
정부가 국회에서 통과된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거부하고 국회에 재의를 요청한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족에 대한 보상 등의 문제가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사정 등으로 추모공원 준공식도 미뤄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산청, 함양사건'의 전말을 모른 채 지리산을 안다고 말할 수 없어요.
가현, 방곡, 점촌, 서주마을의 참극을 모르면서 지리산 역사를 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추모공원 복예관에는 영상실이 있어요.
이곳에서 '산청, 함양사건'의 개략적인 전말과 양민학살 등의 장면을 재구성한 17분 짜리 영상홍보물을 볼 수 있습니다.

그보다 먼저 강희근 시인의 헌시(獻詩)를 읽어볼까요.
위령탑은 억울하게 가신 님들이 반세기 이상 묻어둔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위령탑과 함께 '희생자의 상', '비탄의 벽', '고통의 벽'이 자리합니다.
그와 더불어 헌시를 통해 억울한 외침을 듣게 됩니다.
'흙 파고 씨 뿌린 일 죄가 되는가'

'헌시'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양민을 적이라 하고
작전을 수행했던 이상한 부대
하늘 아래 있었습니다.

가현, 방곡, 점촌 사람 몰살하고
그 아래 야지 마을 사람 반으로 나눠
무차별 사살했던 이상한 부대
이 나라 땅위에 있었습니다.

대대로 살아온 것 죄가 되는가
흙 파고 씨 뿌린 일 죄가 되는가
제 나라 군대의 총알에 맞아죽은 백성들
산발한 채 원혼으로 반세기
하늘을 떠돌아 다니는 나라
이 나라 말고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부대 대장들이 붙들려
눈 가리기로
재판 받고 감옥 갔다 풀려나
승진해 가는 동안
나라의 권력은 善으로부터 고개를 돌렸으니
하늘 아래 권력이 이처럼 오래
죄인의 손 들어주고 다닌 나라
이 나라 말고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역사는 義人들을 내고
진실 화안히 드러내니
이제는 냇물이 제 소리 내며 흐르고
노을과 이슬 저희 허리 펴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오! 반세기
자리에 한 번 앉아보지 못한 7백여 원혼이여
이제는 나라가 법으로 그대들 양민이라 하고
겨레가 입으로 그대들 님이라 부릅니다.
자리에 앉아 편히 쉬세요

진달래 피고 보리가 익는데
님들이 그리워 새들이 재잘거립니다
님들이시여 힘 들어도 오히려 불쌍한 죄인
죄인들
새들의 노래 안에 불러 들이세요.

중매재 고개마루
깨곰이 달리고 산머루 탐스레 익으면
거기 그 빛깔로 도란도란 오세요

오세요 저의 살아남은 자 곁으로
나라 잘못된 나라 되지 않게
염원 알알이 목에 걸고 어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