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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599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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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함양사건 추모공원'은 양지 바른 곳에 자리합니다.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드넓은 부지에 합동묘역과 추모 조형물 등이 들어서 있지요.
2001년 12월13일 합동묘역 조성사업 착공 이후 4년에 걸친 공사 끝에 사실상 준공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어요.

하지만 아직 준공식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어째서일까요?
정부가 국회에서 통과된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거부하고 국회에 재의를 요청한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족에 대한 보상 등의 문제가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사정 등으로 추모공원 준공식도 미뤄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산청, 함양사건'의 전말을 모른 채 지리산을 안다고 말할 수 없어요.
가현, 방곡, 점촌, 서주마을의 참극을 모르면서 지리산 역사를 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추모공원 복예관에는 영상실이 있어요.
이곳에서 '산청, 함양사건'의 개략적인 전말과 양민학살 등의 장면을 재구성한 17분 짜리 영상홍보물을 볼 수 있습니다.

그보다 먼저 강희근 시인의 헌시(獻詩)를 읽어볼까요.
위령탑은 억울하게 가신 님들이 반세기 이상 묻어둔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위령탑과 함께 '희생자의 상', '비탄의 벽', '고통의 벽'이 자리합니다.
그와 더불어 헌시를 통해 억울한 외침을 듣게 됩니다.
'흙 파고 씨 뿌린 일 죄가 되는가'

'헌시'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양민을 적이라 하고
작전을 수행했던 이상한 부대
하늘 아래 있었습니다.

가현, 방곡, 점촌 사람 몰살하고
그 아래 야지 마을 사람 반으로 나눠
무차별 사살했던 이상한 부대
이 나라 땅위에 있었습니다.

대대로 살아온 것 죄가 되는가
흙 파고 씨 뿌린 일 죄가 되는가
제 나라 군대의 총알에 맞아죽은 백성들
산발한 채 원혼으로 반세기
하늘을 떠돌아 다니는 나라
이 나라 말고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부대 대장들이 붙들려
눈 가리기로
재판 받고 감옥 갔다 풀려나
승진해 가는 동안
나라의 권력은 善으로부터 고개를 돌렸으니
하늘 아래 권력이 이처럼 오래
죄인의 손 들어주고 다닌 나라
이 나라 말고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역사는 義人들을 내고
진실 화안히 드러내니
이제는 냇물이 제 소리 내며 흐르고
노을과 이슬 저희 허리 펴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오! 반세기
자리에 한 번 앉아보지 못한 7백여 원혼이여
이제는 나라가 법으로 그대들 양민이라 하고
겨레가 입으로 그대들 님이라 부릅니다.
자리에 앉아 편히 쉬세요

진달래 피고 보리가 익는데
님들이 그리워 새들이 재잘거립니다
님들이시여 힘 들어도 오히려 불쌍한 죄인
죄인들
새들의 노래 안에 불러 들이세요.

중매재 고개마루
깨곰이 달리고 산머루 탐스레 익으면
거기 그 빛깔로 도란도란 오세요

오세요 저의 살아남은 자 곁으로
나라 잘못된 나라 되지 않게
염원 알알이 목에 걸고 어서 오세요.]
  • ?
    김용규 2005.09.25 20:36
    전쟁이후의 세대들은 전쟁의 잔인함에 대해서 전혀 인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 이후의 세대이나 간접경험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아는세대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흘러갔지만 산청함양 사건이 며칠 후 세상에 일찍부터 알려졌던 거창 신원 사건이 있었지요. 그 이면에는 방곡 사건외에 함양의 엄천골짜기 주민들 수백명 역시 학살을 당할 뻔 했었습니다. 당시에 그 현장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생존해 있기도 하지요.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진 전쟁 비사를 아직까지 해결이 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 ?
    오 해 봉 2005.09.26 12:57
    '흙 파고 씨 뿌린 일 죄가 되는가'

    이제라도 진상을 규명하여 원혼을 달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5공때 조사받으며 자기들이 매맞고 고문당한 피해조사는 잘도하고
    보상금도 받으면서 이런억울한 진상조사는 왜 미룬답니까,
    국회의원들이 현장 답사를하고 이헌시를 읽어봤으면 합니다.
  • ?
    김용규 2005.09.29 23:47
    이 세상의 정의(正義)라는 명제는 바른의의라고 가르치고 세인들에게 인지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의 의미는 자신한테 이익이 될때만 그것이 정의라는 자괴감에 빠져듭니다. 아군이 우리편에게 위해를 가한 사실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 그런 사실조차 언급하는게 혹시 죄가 아닌지? '지금 우리는 참 편하니까 뭘 그렇게 고민하느냐 ' 하는 투의 냉소적인 분위기에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헷갈려지는군요.

    세계 10대 무역국, 인터넷 강국, 월드컵 4강신화 달성, 세계최초 배아줄기세포 규명, 세계 각국에서의 한류열풍 바람이 한창인 지금 아직도 가슴아픔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은 채 세인들의 무관심속에 파 묻혀 버린 사건의 해결 실마리는 언제 풀릴까요?
  • ?
    김현거사 2005.09.30 09:57
    6.25이후 지리산에 잔류한 공비로 인한 피아간의 희생이 많았지요.
    저는 안의로 이사가면서 바로 앞서가던 군트럭의 수십명이 몰살 당한 현장도 보았고,안의 읍장이 빨치산에게 피살당하는 것도 보았읍니다.
    밤이면 빨갱이세상 낮이면 국군세상이 반복되었지요.
    빨갱이 돕는다고 국군이 오인하여 양민 학살한 경우도 많았지요.
    국군 돕는다고 빨갱이들이 양민 학살한 경우도 많았읍니다.
    당시 소년이던 우리는 인민군한테 '김일성 장군 노래'도 배웠고,노래 잘하면 머리 쓰다듬키며 건빵도 얻어먹었지요.
    전쟁은 피아간의 희생 위에 진행되었고,그 속에 숱한 아품이 묻혀있어,그것을 지금은 슬기롭게 정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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