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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526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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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지(斷俗寺址)를 찾아가면 절터에 민가가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는 것에 놀랄 것이예요. 이 절에서 젊은 시절 독서하던 이가 심었던 매화나무 '정당매(政堂梅)'를 기리는 '정당매비각'은 세워져 있지만, 당우들은 간곳없이 사라졌어요. '절간이 황폐하여 승려가 거처하지 않는 방이 수백 칸이나 되었다'던 김일손(金馹孫)의 기록이 무색할 법하지요. 하지만 단속사지에만 민가가 들어선 것은 아니지요. 화개동천 의신마을도 원래는 의신사가 자리한 절터 전체에 마을이 자리잡은 것이예요.

1489년 천왕봉에 올랐다가 영신사를 거쳐 의신사로 하산한 김일손은 '대나무 숲과 감나무 밭 사이사이에 채소밭이 있는 것을 보고 비로소 인간 세상임을 깨달았다'고 기술했답니다. 그이는 다시 '시냇물을 따라 흰 돌을 밟고 내려가면서 때로는 지팡이를 짚고 서서 노니는 물고기를 구경하기도 하고', 신흥사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네요. 김일손이 '두류기행록'에 썼던 영신사, 의신사, 신흥사는 당시 이름난 사찰이었어요. 하지만 그 모두는 지금 아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없답니다.

지리산에 들어섰던 사찰, 특히 화개동천의 수많은 사암(寺庵)들이 이처럼 자취를 감추게 된 데는 그만한 사정들이 있을 테지요. 그 사연들을 일일이 추적할 수도 없고, 또 되돌려놓기도 어려운 노릇입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사찰들이 사라진 것과 함께 너무나 값진 우리의 불교문화재들도 송두리째 자취를 감춘 것이지요. 화개동천 내은적암에선 서산대사가 '청허원(淸虛院)'이란 거소를 마련, 역저 '삼가귀감(三家龜鑑)'을 마무리했지요. 하지만 지금 그 터마저 찾아내지 못하고 있지요.

왜구의 잦은 침입과 국내에서의 병란이 일어날 때마다 지리산의 사찰들이 불태워지고, 불교문화의 진수들도 심대한 피해를 입게 됐어요. 이런 와중에 범종이며 금불상 등 우리의 값진 불교미술작품들이 유실되거나 훼손된 것이지요. 지리산의 수많은 문화재들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게 사라진 경우가 많아요. 화개동천 주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에서도 문화재들이 마치 코미디처럼 우습게 망실된 사례들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것도 해방 이후 멀쩡한 세상에서 빚어진 일이니 더욱 안타깝지요.

의신마을 정병준씨(작고)는 6.25 전란 직후 약초를 캐러 영신대에 올랐다가 옛 영신사 터에서 뜻밖에도 땅속에서 범종을 캐냈답니다. 그이는 무거운 범종을 간신히 집으로 가져오기는 했지만, 어떻게 처치해야 할지 몰라 마당 구석에 두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엿장수가 나타나 고물로 팔라고 하여 엿값을 받고 범종을 팔아넘겼다네요. 가난한 지리산 주민들에게는 삼국시대의 찬란한 불교문화 유산인 범종마저 고철로 팔아넘길 정도로 우리 문화재에 대해 무지하기만 했던 암흑시기가 있었지요.

지난 61년 신흥사 절터였던 왕성초등학교 앞에서 숯을 굽고 돌아오던 최모씨가 발부리에 걸린 돌을 걷어찼지요. 돌이 뽑히면서 조그만 석곽이 드러났어요. 거기서 15㎝ 의 금빛 찬란한 불상이 나왔습니다. 뒤따르던 정모씨가 구경 좀 하자며 불상을 받아들더니 그만 개울에 넘어졌답니다. 불상을 놓친 거지요. 아무리 개울을 뒤져도 금불상은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정모씨는 온다 간다 말 한마디 없이 이사를 떠났답니다. 그로부터 그는 다시는 얼굴을 나타내지 않았다네요.

의신마을에 한문을 가르치는 서당이 있을 때였답니다. 정태균이란 서동이 마을앞 개천에서 가재를 잡다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지요. 물에 씻고 보니 작지만 빛나는 금불상이었답니다. 정서동은 곧 훈장에게 달려가 금부처를 보였습니다. 이모저모 뜯어보던 훈장이 느닷없이 벼락같은 호통을 쳤다네요. "네 이놈, 노략질을 하다니!" 훈장은 서동에게 벌을 주고 금부처를 압수하더라나요. 이 얘기를 들은 서동 아버지가 다음날 아침 서당에 따지러 갔더니, 훈장 일가는 야반도주를 하고 없었답니다.

이런 이야기의 진위여부는 물론 알 수 없어요. 하지만 화개동천 주민들이 괜한 얘기를 지어내서 말할 리야 없지요. 옛날옛적의 우화(遇話)같은 이들 이야기가 그저 실소만 자아내게 하는 것은 아니예요. 지리산의 문화 유산들에 대한 수습과 발굴, 보존과 관리가 얼마나 허술했었는지를 아프게 설명해주는 것이니까요. 지리산에는 나무와 풀과 돌과 물만 있는 곳이 아니지요. 우리 선인들의 삶의 역사와 자취들이 갖가지 형태로 자리해야 마땅해요.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니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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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거사 2002.08.08 15:35
    화개동천 삼신동에 전해지는 몇개의 우스갯거리같은 이야기가 우리 문화유산들이 처했던 아픔의 일부나마 대변하는듯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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