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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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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훌쩍 무작정 지리산으로 떠났다고 하면, 나는 옛 삼신동인 화개동천 신흥부락에 발길을 들여놓을 때가 많은 편입니다.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삼신동은 고운 최치원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지요. 하지만 삼신동에 닿은 나는 홍류교(紅流橋) 능파각(凌波閣)을 환영(幻影)처럼 그려보며 아쉬움과 그리움에 젖을 때가 많습니다. 휴정 서산대사의 '신흥사 능파각 기'는 지리산 관련 글 가운데 최고의 명문장이지요. 그 글이 그려내는 홍류교 능파각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꿈결같은 연상작용을 해주는 것입니다.

'화개동천 깊은 곳에 너댓 집 마을이 있다. 꽃나무 대나무숲이 있고, 개소리 닭소리가 들린다. 마을 사람들은 아주 소박한데 땅을 일구어 씨뿌려 거두는 것만 알고, 만나고 찾아오는 이는 늙은 중 뿐이다. 신흥사에서 남쪽으로 수십 보 내려가면 두 시내가 모여 내를 이루는데 맑은 물이 돌에 부딪히고 꺾여 소리를 내며 뒤집힐 때마다 물보라가 눈꽃처럼 튀긴다. 시내 양언저리는 수십 개의 흡사 소와 같고 양 같은 바윗덩이가 쭈뼛쭈뼛한데 이 돌들은 태초에 하늘이 이렇게 험하게 하여 신령스런 곳에 숨긴 것이리라.'

휴정 서산대사가 머물 때의 삼신동 모습이 자연 그대로입니다. 그는 이 글의 머리 부분을 화개동천에 대해 쓰고 있지요. 그 메시지가 아주 선명합니다. '신흥사는 깊숙한 골짜기 속에 자리하는데 이곳을 화개동천이라 한다. 골짜기는 입구가 좁아 사람이 병 속을 들락거리는 것 같다.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곳에 한 푸른 골짜기가 있다. 거기에 푸른 학이 산다 하여 청학동이라 부른다. 남쪽으로 바라보면 강 건너에 몇 개의 봉우리를 솟아올린 산이 있다. 그 산을 백운산이라고 하고, 거기서 늘 흰 구름이 피어 오른다.'

여기서 동쪽에 푸른 학이 사는 청학동이란 불일폭포를 가리킵니다. 남명과 김일손도 불일폭포를 청학동으로 지목했어요. 그런데 두 냇물이 합쳐지는 그곳이 겨울에는 얼고, 여름에 비가 내리면 사람들이 잘 건너다닐 수 없어 불편했다는 군요. 그래서 명종 16년(1561년) 여름에 신흥사 주지 옥륜(玉崙)스님이 함께 수도하던 조연(祖演)스님과 이 바윗덩이들을 깨고 다듬어 긴 돌다리를 이루고, 그 위에 다섯 간의 누각을 지어 단청을 곱게 했다 합니다. 다리는 '홍류교'라 이름하고, 누각은 '능파각'이라 불렀지요.

'승려들은 여기서 선(禪)의 경지를 찾게 되고, 시인들은 시흥을 짜내고, 도사(道士)들은 환골(換骨)의 수련을 하지 않아도 바람을 이끌어 날렵하게 다닐 수 있다. 옥륜과 조연 등이 그윽한 공간에 마음을 맡기고, 흐르는 구름에 몸을 어울리게 하며, 지팡이로 한가하게 와서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차를 마시거나, 혹은 누워 늙음이 절박함을 모르고 오히려 즐거움에 취한다. 누각에 오르면 몸이 붕 떠서 별들이 만져줄 것을 바라는 듯한 신비로움을 경험하고, 눈길이 천리에 이르매 하늘에 오른 듯한 황홀함을 느낀다.'

서산대사는 '홍류교 능파각' 시를 따로 남기기도 했지요. '다리에 걸린 구름 물에 비쳐 흘러가고 / 산승은 오늘도 무지개를 밟고 섰네 / 인간사 어지럽기 그 몇 번이련가 / 세월이 백성을 저버려 늙기도 어렵고녀 / 봄 저문 골짜기에 꽃비 휘날릴 제 / 달 밝은 하늘 아래 다락은 비어있소 / 물소리 솔바람은 천년의 음악인데 / 만고의 누리에서 한바탕 웃어보세' 그는 '능파각기'에도 '밭갈이 가는 농부, 빨래하는 사람, 풍월을 읊는 사람...모두 이 누각에 올라와서 제각기 즐거움을 누리지 않는 이가 없다'고 썼어요.

서산대사는 홍류교 능파각이 '여러 사람의 흥취를 돕는 것이 얕지 아니하고, 비바람과 눈과 빙판을 만나도 건너는 자가 옷을 걷을 수고가 없으니 쉽게 내를 건너게 해준 공이 크다'며 그 공을 칭송했지요. 하지만 그이는 글 말미에 '한스러운 것이 있다면, 태초에 하늘이 이 신령한 곳을 숨겨놓은 것을, 지금 옥륜과 조연스님이 구름을 헤치고 산문을 열어 드디어 산과 골짜기와 시내와 사원을 인간세상에 드러나게 만들어 이름을 숨기기 어렵게 한 일이다'고 썼어요. 예나 지금이나 개발(?)의 아픔은 같다 하겠습니다.

홍류교 능파각이 자리했던 곳에는 지금 묵직한 시멘트 교량이 걸려 있습니다. 서산대사가 태초에 하늘이 신령스러운 곳에 숨겨두었다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파괴된 지 오래이지요. 승려들이 선의 경지를 찾고, 시인들이 시흥을 짜냈다는 홍류교 위의 능파각의 모습은 그 상상이 어려울 만큼 주위 풍경이 어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잠깐 시공을 초월하여 서산대사의 글을 가만가만 더듬어가면 돌다리였다는 홍류교와 단청을 곱게 했던 능파각이 뚜렷이 떠오르지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저 감탄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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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거사 2002.05.02 15:25
    [삼신동]...休靜의 묘사가 더욱 仙境으로 닥아오는군요, 더구나 [凌波]라 함은 漢字的 의미보다 차원높은 佛家的인 뜻으로 느껴집니다..건성으로 지나다니던 곳의 깊은뜻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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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호정 2002.08.13 12:46
    화개동천 예찬 글을 읽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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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호정 2002.08.13 13:05
    화개동천에 時空을 넘어 새로이 능파각 예찬해 올리시니 몽매한 후손들 개탄속에서도 님의 글앞에서 깨우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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