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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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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334-2번지.
조선 선조 10년(1577년) 왕명으로 황산대첩비가 세워졌지요.
이성계 장군이 이곳 황산 전투에서 왜구를 섬멸한 것을 길이 기리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었답니다.
대첩비 건립 당시에는 오랫동안 대첩비를 잘 보전하기 위해 비각과 별장청 등의 관리건물도 지었어요.
전각 3칸, 전문 1칸, 수직료 5칸, 직사 3칸이 있었고, 승장 1명과 의승이 1개월씩 번갈아가면서 관리를 했답니다.

황산 전투는 훗날 이성계가 조선 왕도를 건설하여 개국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든 것으로 그 뜻이 큽니다.
즉 군사력에서의 군부 장악과 신진세력의 지지를 얻는 그 바탕을 이룩하는데 황산대첩이 절대적으로 기여한 것이지요.
세종대왕 때 편찬된 '용비어천가'에 이 황산전투를 상세하게 기술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합니다.

황산대첩비를 세울 때 당시 운봉현감 박광옥이 황산전투의 경과를 상세하게 기록한 황산대첩사적비도 함께 조성했었어요.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비석들이 있습니다. 효열비, 송덕비, 불망비, 선정비, 대첩비, 기념비 등등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석들이 산재합니다.
그렇지만 황산대첩비가 다른 비석들과 특별히 구별되는 까닭도 조선 왕조 건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일 거에요.

그러나 이 황산대첩비는 일제(日帝)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의 한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송두리째 파괴됩니다.
조선총독부는 1943년 11월24일을 시작으로 조선의 각도 일본인 경찰부장들에게 비밀지령을 내렸어요.
'유림의 숙정과 반시국적 고적의 철거'라는 공문을 내려 조선 각지방의 일본 관련 비문과 비석을 찾아내어 철거하라는 명령과 함께 그 모두를 철저히 파괴하는 공작을 벌인 것이에요.

이 악랄한 만행으로 전국의 대일본 전승비와 대첩비 20개 이상이 친일파 형사와 일제 경찰에 의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되고 비문이 징으로 쪼아져 알아볼 수 없게 되는 등의 수난을 겪게 되었어요.
고양 행주전승비, 청주 조헌전장기적비, 공주 망일사은비, 아산 이순신순도비, 진주 김시민 전성극적비, 통영 이순신 충렬묘비 등과 함께 운봉 황산대첩비도 잔인하게 파괴된 것입니다.

특히 운봉 황산대첩비는 1945년 1월 일제의 남원경찰이 소방대를 동원하여 비를 폭파하고 비문의 글자를 말소시켰어요.
1577년에 세워진 뒤 400년 가까이 운봉의 수호신처럼 지리산을 지켜온 황산대첩비는 이렇게 무참하게 폭파가 되고 말았답니다.
하지만 파괴된 비석을 파비각에 보존하고 있지요.
파괴된 황산대첩비가 지금까지도 그 아픔을 생생하게 전해오고 있는 거에요.

정부 수립 이후 황산대첩비 터 일대를 사적 제104호로 지정했습니다.
또 1958년에는 부서진 귀부(땅에 닿은 받침돌)와 이수(비문을 새겨놓은 비신 위에 장식하는 머릿돌)를 그대로 이용하여 중건한 파비각(破碑閣)을 세웠어요.
1972년 국문학자 신석호씨에 의해 한글로 사적을 기술한 대첩비를 새겨 다시 세웠습니다.
1973년에는 비전(碑殿), 홍살문, 삼문, 담장, 그리고 부속건물 등을 새롭게 세워 면모를 일신하게 되었어요.

황산대첩비는 전국 곳곳에 세워져 있는 수많은 비석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새로 세운 비석 옆에 일제의 만행에 의해 파괴된 비석을 그 상태대로 보전하고 있는 '파비각'이 함께 서있는 것에서 남다른 감회가 따르는 거에요.
황산대첩비는 왜구를 섬멸한 것을 기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일본의 한민족문화 말살의 야만성 또한 선명히 엿보게 해주고 있어요.
지리산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이 사적지를 한번은 꼭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 ?
    김용규 2005.02.17 23:02
    운봉과 조선의 건국과는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셈이군요. 황산대첩비를 새롭게 인지해야 하겠습니다.
  • ?
    오 해 봉 2005.02.18 11:45
    "특히 운봉 황산대첩비는 1945년 1월 일제의 남원경찰이 소방대를 동원하여 비를 폭파하고 비문의 글자를 말소시켰어요"
    안타깝고 비통한 일이군요,
    지금 정부에서 실시중인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몫일까요?,

    이성계장군이 이지란을 데리고내려가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를 크게
    격파했다고만 알았는데 여산선생님 칼럼으로 좋은공부 감사합니다.
  • ?
    선경 2005.02.18 12:22
    파비각이 함께 서있는 황산대첩비...조선의 건국의 계기와..
    왜구를 섬멸한것을 기리고 한 민족문화말살의 야만성까지 선명히 엿보여준 사적지 이곳을 자세히 알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이국에서 자란 2세들과 함께 꼭 들려 역사를 이야기해주며 산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겠습니다....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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