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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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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찾을 때 무엇을 어떻게 보고 느낄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짙은 숲의 향기를 맡거나 맑은 물소리르 듣는 것만으로 기뻐할 수 있지요. 하지만 마음먹고 발길을 들여놓게 되는 만큼 그곳에 서린 사연을 미리 알고 찾으면 그 감흥도 훨씬 달라질 것이예요. 이를테면 쌍계사 경내의 경남문화재자료 제74호 '팔영루(八泳樓)'는 목조건축물의 아름다움만 볼 것이 아니지요. 범패음곡을 창시한 진감선사가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서 '어산(魚山)'을 작곡했다고 하여 '팔영루'란 이름이 붙여진 연유를 안다면 그 집을 보는 눈의 각도부터 달라질 겁니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 쪽으로 잠시 오르면 국사암(國師庵)이 있어요. 쌍계사 전신 옥천사를 창건한 삼법(三法)화상이 세웠으니 그 역사가 오래 됩니다. 723년 삼법화상이 당나라에서 혜능의 정상을 모셔 안치할 옥천사터를 찾을 때 눈 덮인 겨울철에 꽃이 피어있는 곳으로 호랑이가 안내를 하였다고 하여 '화개(花開)'란 지명이 생겨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죠. 그런데 옥천사를 쌍계사로 개명토록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 진감선사인데, 그는 국사암에 주석하며 범패음곡을 널리 보급하였어요. 국사암 아랫마을 '목압(木鴨)'은 선사가 날려보낸 나무기러기가 앉은 데서 유래합니다.

국사암에서 불교음악의 원류인 범패음곡을 보급한 때문인지 이 암자와 국악의 관계는 근래까지 특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 87년 이 암자에선 대규모 '불교음악제'가 열렸지요. 불교 중흥은 불교음악을 통해서 이룩해야 된다고 판단한 석상훈 주지의 뜻에 의해서였죠. 당시 중앙국악관현악단의 박범훈씨와 김성녀씨 등 많은 국악인들이 출연했어요. 그 해 2월18일에는 '양심선언'의 큰 파문을 남기고 종적을 감추었던 도올 김용옥씨가 이 암자에 거처를 정해놓고 불일폭포를 오가며 지냈고요. 당시의 석상훈 주지는 '한밤중에 바이얼린을 켜는 스님'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요즘 국사암은 조용합니다. 한밤중에 바이얼린을 켜는 주지가 떠난 지도 오래 됐고, 도올 김용옥씨나 박범훈, 김성녀씨 등의 모습도 보이지 않지요. 한때 쌍계사 주변 주민들은 국사암 주지의 배려로 서울, 부산 등지에서 열리는 국악공연장을 찾기도 했고, 일부 주민의 자녀는 박범훈씨의 영향과 배려로 국악의 길로 나아가기도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국사암 아랫마을 목압에는 전통가옥 대신 요란한 모습의 모텔까지 들어섰고, 목압마을에서 국사암으로 오르는 도로를 시멘트 포장도 해놓았답니다. 국사암도 불사를 했지만, 불교음악제를 열던 그 시절의 낭만은 사라진 듯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불일폭포를 찾을 때는 꼭 이 국사암에 들립니다. 사람이야 들고 나고, 행사도 사람에 따라 생겨나기도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국사암에는 변함없는 한 가지 매력이 있기 때문이지요. 국사암 정문 앞 '사천왕수(四天王樹)'가 그 주인공입니다. 절의 동서남북에 사천왕을 세워 신성한 영역을 지키게 하는 것을 나무 한 그루가 대신한답니다. 수령이 얼마나 됐는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이 노거수(老巨樹)는 하나의 둥치에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가지가 절묘하게 뻗어 있어요. 나무 스스로 국사암을 지키기 위해 사천왕수로 태어났는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도 아주 신성하답니다.

그런데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 사천왕수가 진짜 절묘한 것은 네개의 가지를 벌린 그 아랫 둥치 부분이예요. 놀랍게도 여자의 성기를 너무나 빼닮은 절묘한 형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여성들에게 그것을 보여주면 100에 100명이 금세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더군요. 그런데 그 모양이 암자로 드나드는 길에서는 결코 보이지가 않아요. 그것을 알고 일부러 앞쪽으로 돌아가 찾아보지 않으면 보여주지 않으니, 그것 또한 신비한 일이라고 하겠네요. 거룩한 사천왕수가 어찌 이 얄궂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국사암을 찾아갈 때마다 그것이 정녕 불가해하게 생각되는 거예요.

사천왕수의 이 절묘한 형상을 나 혼자만 은근히 즐기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누구 얘기를 빌리면, 사하촌 남정네들이 야밤에 이곳에 올라와 자신의 아랫도리를 그곳에 대고 부비는 일이 있다고 하더군요. 아무 때나 그러는 것이 아니라, 주지 스님이 일거리를 잘 주지 않거나, 마을과 사이가 안 좋을 때 그 짓을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주지 스님이 암자를 떠나가게 된다는 속설이 있다네요. 그 진위를 확인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어쨌든 나무 하나에도 이런 엄청난 매력과 사연이 따른다는 것이 흥미 이상의 것이지요. 지리산의 나무 한 그루에도 지리산의 신비로운 기운이 깃들어 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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