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시루봉의 '선교 유적지'...(1)

by 최화수 posted Nov 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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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래의 지리산 지도에는 왕시루봉에 '외국인 별장'이란 표시를 해놓았답니다. 해발 1214미터의 지리 영봉에 웬 '외국인 별장'? 이런 의문이 앞설 법도 합니다.
지리산 지도의 '외국인 별장' 또는 '외국인 별장촌'이란 알고보니 '외국인 선교사 수양관'이더군요. 노고단의 선교사 수양관이 전란으로 수난을 겪은 뒤 이곳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양관'의 기능을 잃게 되면서 '선교사 유적지'로 불리고 있기도 합니다.


선교사 수양관의 일부인 왕시루봉 삼각 건물--인터넷 자료사진

왕시루봉의 이 선교사 유적지의 오두막들과 교회당, 기타 시설물들이 철거될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 일대 산림을 관리하는 서울대 남부연습림 측은 '선교사 유적지'를 관리하고 있는 인요한(세브란스병원 외국인 진료소장, 본명 존 A 린턴)에게 오두막을 비롯한 각종 시설물들을 철거하겠다고 공식 통보를 해왔다는 군요.

"지리산은 선교사들의 '기도의 산'이다. 불교와 천주교는 유적지를 잘 지키는데, 기독교는 왜 그렇지 못 할까? 선교의 역사를 모두 부정하는 것일까?"
인요한은 자신은 물론이요, 선친 등의 믿음과 얼이 배어 있는 왕시루봉 선교 유적지가 사라져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현실 앞에 이처럼 자탄(自嘆)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이는 마지막 한 가닥 희망만은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왕시루봉의 일은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곧 해결해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지리산은 신앙의 산입니다.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속신앙과 불교문화가 지리산의 수많은 골짜기와 능선을 뒤덮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중들의 숨결이나 맥박도 지리산의 역사와 함께 합니다.

지리산의 그 신앙은, 무속이든 불교이든 기독교이든 천주교이든 지리산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불교의 찬란한 문화를 전승하고 보존해야 하듯이 기독 선교의 생생한 발자취도 하나의 역사로서 보존하고 기려야 할 필요가 있을 거예요. 사찰 등은 불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데, 기독교 선교 유적지는 일방적(?)으로 밀려나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나지요.

이달 들어 광주와 전남지역의 기독인들이 지리산 왕시루봉 선교 유적지 보존을 위한 기도운동을 잇달아 벌이고 있습니다.
광주 기독병원과 기독간호대학 소속 기독인들이 지난 1일 왕시루봉 유적지를 찾아 기도회를 열었고, 3일에는 전남 순천시 천보교회 여목회자 회원들이 왕시루봉에 올라 기도회를 가졌답니다.

기도회에 참가한 기독교인들은 왕시루봉 선교 유적지가 국유재산관리법과 관리처의 무관심으로 철거돼 안타깝다면서 "선교사들이 이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고 개화기 교육사업 등에 큰 몫을 담당했던 점을 감안, 선교 유적은 보존돼야 마땅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특히 노고단과 왕시루봉 선교 유적지는 호남지역의 선교 역사를 함축적으로 안고 있다고 할 만합니다.

노고단에 이어 왕시루봉의 선교 유적지도 사라지게 된다면, 그것은 종교 문제를 떠나서라도, '지리산 역사'의 한 페이지가 멸실(滅失)되는,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합니다.
왕시루봉 수양관은 선교사 유적지만으로 그치지가 않지요. 이곳은 지리산을 사랑하는 우리 산악인들과도 각별한 인연과 사연이 점철된 곳이니까요.

왕시루봉 선교사 수양관.
노고단산장에서 피아골대피소로 밀려난 함태식님이 울분을 삭이지 못하던 중 왕시루봉 수양관 관리인으로 옮겨 지내면서 심신의 건강을 되찾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함태식님이 머물게 되면서 이광전 임소혁 등 지리산을 좋아하는 산악인들이 이곳의 또다른 오두막을 빌어 지리산 열정을 꽃피우기도 했습니다.
지리산 사진작가 임소혁의 '에이텐트'가 유명했지요.

그렇지만, 유적지 철거 통보에 그 누구보다 가슴 아픈 이는 이 유적지의 책임관리자인 인요한, 바로 그이라고 하겠습니다. 인요한은 누구일까요?

'지리산을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은 누구일까? 지리산을 가장 사랑하는 한국인을 꼽으라면 그 대답이 쉽지 않을 것이다. 지리산을 사랑하는 내국인은 워낙 많다보니, 그 가운데 과연 누가 으뜸인지를 단정하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러나 외국인 가운데 지리산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들라면 금세 그 이름을 댈 수 있다. 그이는 곧 존 A 린턴(John A Linton)이다. 그는 한국명 '인(印)요한'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지리산 사람들로부터 '자니'란 애칭으로 더 친근하게 불려지고 있다.'

위의 글은 필자의 졸저 '지리산 1994년'에 실려 있는 내용의 일부입니다.
그 글을 썼던 때로부터 어언 10년째가 되는 군요. 10년이 지난 지금, 인요한은 '선교 유적지 철거'라는 아주 벅차고 힘든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지요.
그이는 이렇게 회상하기도 합니다.

"지리산은 '기도의 산'이다. 한국 사람들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 위해 산을 오르듯이 나 역시 지리산을 올랐다.
땀을 흘리며 올라가면 어떤 큰 문제든지 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광주에서의 일로 후유증을 앓을 때도 지리산에 올라갔고, 사람에게 상처 받았을 때도 지리산을 찾았다.
아마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에게 업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해마다 몇 차례씩 지리산을 오르다 보니 든 버릇이라고 여겼다."

Daum 칼럼 '최화수의 지리산 통신' 제1부 제20~23호(2001년 2월25일~3월2일)는 '인휴대'의 '선교사 수양관'이란 제하로 세 차례에 걸쳐 왕시루봉의 선교사 유적지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인휴대'는 일부 사람 사이에 불려지는 왕시루봉의 별칭임).
거기에는 인요한이 지리산을 어떻게 생각고 있는지를, 그의 다음과 같은 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존 덴버의 '컨트리 러브'란 노래가 있지요.
그 노랫말 가운데 '어제 왔어야 했는데, 오늘 온 게 너무 아쉽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지리산이 꼭 그렇습니다.
지리산을 찾아오는 날마다 이 산이 너무 좋아 어제 찾아오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하지만 지금 그이에게 갑자기 닥친 왕시루봉 선교 유적지 철거 문제는 지리산 사랑 못지 않게 큰 아픔을 안겨주고 있을 것입니다.
왕시루봉은 인요한 일가의 마음의 고향이요, 지리산을 좋아하는 많은 산악인에게도 동화세계나 무슨 전설처럼 아련한 추억이 깃듯 곳입니다.
왕시루봉의 그 전설적인 이야기는...
                                                         (다음 호 칼럼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