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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580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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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5월 지리산에 처음 올랐던 부산 산악운동의 선구자 신업재(愼業縡) 님. 지리산 초기 등반사에서 기념비적인 일들을 많이 하는 등 남다른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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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사람과 진주 사람이 지리산은 자기들의 산이라며 서로 말다툼을 벌인다.”
불일폭포를 30년 동안 지켰던 고 변규화 님이 언젠가 필자에게 들려준 얘기이다.
지리산은 워낙 크다보니 경남과 전남북 3개 도에 걸쳐 있다. 전남과 경남의 중심도시인 광주와 진주 산악인들의 지리산 사랑이 각별한 것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지리산 초기 등반사를 더듬어보면 광주나 진주만이 아니라 구례와 남원, 부산과 마산 등 영호남 각 지역 산악인들이 등반로 개척과 인명구조 활동 등 여러 가지 일에 많이 참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잘 알려진 것은 우종수 님의 구례 연하반산악회가 이룩한 빛나는 활동, 그리고 진주 출신 산악인 허만수 님의 남다른 지리산 활동 등이다.

또 있다. 부산 산악인들의 지리산 사랑도 각별했다.
일련의 지리산 관련 책들을 부산 사람들(김경렬-이종길-최화수)이 잇달아 펴낸 것에서도 그것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지리산 책을 펴낸 이들보다 훨씬 먼저 부산 산악인으로서 지리산에서 기념비적인 활동을 벌인 선구자들이 훨씬 더 많다.

부산에는 지난 2003년 창립된 ‘부산산악포럼’이 있다.
부산지역 산악계에서 역동적이고 진취적으로 산악활동을 펼쳐온 이들이 참된 산악문화의 창달을 위해 다시 한 번 순수하고 고귀한 의지를 모아 이 모임을 만들었다.
부산산악포럼은 올해 들어 ‘부산산악연감’ 창간호를 펴냈다. 이 연감에는 ‘부산등산사 재조명’(집필 이종길) 특집이 있는데, 초기 지리산 산악활동도 소개하고 있다.

부산의 근대등산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한국산악회 부산지부 전 회장 신업재(愼業縡) 님이다. 그는 15세이던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5년제 중학을 졸업하고 순천당병원 견습생으로 일했다. 이 때부터 그는 후지산(富士山)에 오르고 스키도 배우면서 본격적인 산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국에 돌아와서는 부산 초량동 백제병원에 근무하면서 23세였던 1928년 의사자격증을 따냈다. 그는 곧 부산 범일동에 회생병원을 개업했고, 신창동, 암남동 등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의술활동을 펼치는 한편 등산운동을 펼쳤다.

그이가 등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29년 3월 금강산에 처음 오른 뒤부터였다. 그는 해방이 되기까지 금강산을 28번 찾았으며, 암벽등반은 31세이던 1936년 북한산 인수봉에서 시작했다. 당시에는 한국인 클라이머가 1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1937년에 창립된 백령회(白嶺會)의 대부 엄홍섭이나 김정태, 양두철 님 등과 함께 등반을 많이 했다고 한다.

신업재 님이 지리산에 처음 오른 것은 1931년 5월 하순이었고, 그 후 1971년 8월의 한국산악회 부산지부 주최 지리산 종주등반까지 모두 33회 지리산 등정을 했다.
그이는 또 일본인들이 몇몇 조선인들을 끌어들여 조선산악회를 만들어 활동하던 것에 반기를 들고 민족적인 자존심으로 한인들만이 1937년 비밀리에 만든 백령회 회원이 되었다.

신업재 님이 찾았다는 1930년대를 비롯하여 해방 이전의 지리산은 어떠했을까?
한국산악회 부산지부에서 펴낸 ‘30년의 회고’라는 글에서 당시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 있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지리산 종주등반을 하면서도 한 사람의 등산인도 만나지 못하고, 다만 약초 캐는 사람과 포수를 어쩌다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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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eon 2009.11.30 17:09
    흥미진진한 영화 시리즈를 기다리는 심정으로.다음이야기 기다려 집니다.
    저는 칠선계곡을 탐방하기 위해 우종수님께 질문을 드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인터넷 시대가 아닐때이니 편지를 직접 쓰고 답변을 받아들고 뛸듯이 기뻤었구요.. .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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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화수 2009.11.30 18:48
    진원 님,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사실 '어제'가 없는 '오늘'은 이 세상 어디에도 있을 수 없겠지요.
    지리산을 사랑하는 이들이 너무너무 많은 오늘입니다.
    그렇지만 초창기 지리산을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더듬어 보는 것도 나름대로의 뜻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리산 초기 등반사에서,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산 사람들의 지리산에 대한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엮어볼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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