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5151 댓글 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필자의 개인적인 사설을 잠깐 늘어놓겠습니다.
지리산의 인문지리에 심취, 그 숨결을 찾아보는 것이 어언 이십수년째가 되고 있습니다.
지리산 인문지리에 눈을 뜨도록 필자에게 그 길을 인도해준 분은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과 점필재 김종직(점畢齋 金宗直)입니다.
두 분을 필자에게 억지로 끌어다 붙인다면 어떤 인연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앞의 분은 필자의 중시조(中始祖)이시고, 그 다음 분은 필자와 같은 고향, 곧 경남 밀양(密陽) 출신이니까요.

김종직의 지리산 기행록 <유두류록>과 그의 제자 김일손의 <속 두류록>은 필자가 지리산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리산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민중의 애환과 숨결이 응집돼 있는 '문화 특구'임을 깨우쳐 준 것이지요.
1980년대, 지리산을 즐겨 찾기 시작하면서 필자는 이 값진 기행록들을 부산의 원로언론인 김경렬옹의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됐어요.
그 경이와 감동은 아직도 필자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김종직의 빼어난 문장과 예리한 통찰력, 그 가르침을 따라 지리산의 인문지리를 더듬어 가는 동안 필자는 지리산 둘레에 고운 최치원의 족적이 너무나 많은 것에 놀랐습니다.
지리산 곳곳에 그이의 자취가 신비로운 사연들과 함께 남아 있는 것이에요.
문창대(文昌臺)와 고운동(孤雲洞), 세이암(洗耳岩)과 삼신동(三神洞)...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이지요.
지리산 신선이 되어 천년의 시공을 넘어 영생한다는 전설까지 있으니...

최치원과 김종직은 정여창, 박지원과 함께 함양(咸陽) 고을을 빛낸 목민관으로 기억되고 있지요.
최치원은 891년 함양태수를 지냈고, 김종직은 1471~74년 함양군수를 지냈으니까 500여년의 간격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그들의 그 시공의 차이가 함양 학사루에선 절묘하게 극복이 됐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최치원도 김종직도 학사루에 즐겨 올라 똑같이 시를 지었던 것이지요.

상림(上林)은 함양태수로 부임한 최치원이 위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둑을 쌓고 호안림(護岸林)으로 조성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되고 규모가 큰 인공림이지요. 함양 주민들은 그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학사루(學士樓)를 지어 목민관 최치원의 뜻을 기리고자 했다는 거에요.
주민이 지은 이 정자를 최치원이 즐겨 찾아 시를 짓고는 했다고 하여 후세 사람들이 '학사루'라고 그 이름을 불렀다고도 합니다.

그로부터 500여년이 지나 함양군수로 부임한 김종직도 이 학사루를 즐겨 찾아 시를 짓고는 한 것이지요.
천하의 대문장가 최치원이나 영남학파의 종조인 김종직이 500여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학사루에서 시문(詩文)으로 하나로 통했다고도 하겠습니다.
김종직은 학사루에 걸려 있는 관찰사(觀察使) 유자광(柳子光)의 시판(詩板)을 보고
"어찌하여 소인배의 글이 학사루에 걸려 있느냐, 당장 철거토록 하라"고 한 것에서도 그이가 이 정자를 얼마나 거룩하게 보았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김종직은 최치원이 조성한 상림도 곧잘 찾았다고 합니다.
상림에는 원래 함양읍성의 남문이었던 함화루가 있어요. 지리산이 잘 보인다고 하여 '망악루'라고 불렀던 이곳에서 김종직은 지리산의 장엄함과 자연에 대한 겸손을 노래한 한 편의 시를 남기기도 했답니다.
천왕봉 등정을 했던 다음해, 곧 1473년에 지은 시라고 생각이 되는 군요.

'작년에는 내 발자취가 저 묏부리를 더럽혔거니
망악루 위에서 다시 대면하니 무안도 하구나
산신령은 거듭 더럽히게 될까 두려워하여
흰 구름을 시켜 곧 문을 굳게 닫는구나.'

최치원을 위해서 지은 학사루입니다.
그 학사루는 500여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최치원과 김종직이 시와 학문으로 합일이 된 곳이기도 하지요.
고귀한 학사루가 '소인배'의 시판으로 더럽혀질 수가 없다는 것이 김종직의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인배라고 멸시를 당한 그 시판의 주인공이 훗날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켜 김종직에게 끔찍한 앙갚음을 합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요.
  • ?
    오 해 봉 2004.08.05 00:35
    영남학파의거두 점필재 김종직님의 고향이 여산선생님과 같은밀양 이었군요,
    최치원은 태수 김종직 정여창 박지원은 군수를지낸 함양의 빛나는목민관 이란 좋은공부 감사합니다,
  • ?
    솔메 2004.08.05 09:50
    고운 , 점필제 선생간의 오백여년의 세월과 그 오백여년후의 오늘날에 다시 새겨보는 '지리와 함께하는 역사공부'가 더욱 가치있게 생각됩니다.
  • ?
    김현거사 2004.08.06 07:06
    점필재의 시가 참 좋습니다.
  • ?
    솔메 2004.08.06 16:57
    여산 선생님,
    이즈하라에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가시는 행사이지요?
    부산과 쓰시마의 역사적인 관련성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부산의 언론과 文脈을 대표하는 선생님의 방문이 더욱 보람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 ?
    섬호정 2004.08.07 23:29
    여산 선생님! 쓰시마 이즈하라에서 언론 문화교류 '아리랑축제'성공적인 행사 되어 오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운 날씨 건강 유의 하시고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학사루(學士樓)와 느티나무(2) 5 최화수 2004.08.04 5151
111 학사루(學士樓)와 느티나무(1) 4 최화수 2004.08.03 5243
110 엄천사(嚴川寺) 차향(茶香)(3) 8 최화수 2004.07.29 5683
109 엄천사(嚴川寺) 차향(茶香)(2) 1 최화수 2004.07.23 6046
108 엄천사(嚴川寺) 차향(茶香)(1) 3 최화수 2004.07.21 5945
107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7) 1 최화수 2004.07.15 5448
106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6) 3 최화수 2004.07.09 5983
105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5) 1 최화수 2004.07.08 5518
104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4) 1 최화수 2004.07.06 5678
103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3) 2 최화수 2004.06.30 6190
102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2) 4 최화수 2004.06.27 5986
101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1) 3 최화수 2004.06.13 5972
100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4) 5 최화수 2004.06.02 5618
99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3) 4 최화수 2004.05.23 5625
98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2) 4 최화수 2004.05.19 5185
97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1) 3 최화수 2004.05.16 5726
96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8) 4 최화수 2004.05.03 5677
95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7) 2 최화수 2004.04.16 5186
94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6) 2 최화수 2004.04.09 5747
93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5) 2 최화수 2004.03.17 569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14 Next
/ 14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