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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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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소설이나 설화의 주인공이 오늘날 문화자원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요. <춘향전>의 저 성춘향은 지리산 남원권의 전통문화를 빛내오고 있는 것으로 너무 유명합니다.
소설 <홍길동>이 실존했다는 전남 장성군과 지은이 허균의 출생지인 강원도 강릉시는 홍길동 캐릭터를 둘러싸고 수년째 신경전을 벌여오고 있답니다.
전남 곡성군과 인천 옹진군은 <심청전>의 심청이로 줄다리기를 해오고 있지요. 곡성군은 소설의 배경이 된 설화를, 옹진군은 소설의 무대가 된 '인당수' 등 지명을 내세워 서로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소설이나 설화의 주인공과 관련하여 지자체들이 연고권을 주장하는 것은 문화자원으로서 엄청난 효용가치를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홍길동'의 경우 장성군은 본 캐릭터 25종, 보조 캐릭터 48종 등 의장 상표 129건을 등록하고 지난 1999년부터 '홍길동 축제'를 열어오고 있지요. 황룡면 아곡지 아치실 일대 홍길동 생가 터 1000여평에 테마파크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네요.
강릉에서도 매년 9월 '허균 허난설헌 문화제'를 열어오고 있지요.

지리산에 살았던 인물로 판소리 '가루지기 타령'을 낳게 한 변강쇠와 옹녀에 대한 연고권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네요.
민속주로 '강쇠주'나 '옹녀주'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서 그 효용가치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거에요.
변강쇠와 옹녀의 연고권을 주장하는 곳은 전북 남원시와 경남 함양군이지요. 다른 일들은 두 지자체가 서로 잘 협조하여 해결하지만, 강쇠와 옹녀의 연고권만은 어느 쪽도 양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두 지차체의 변강쇠 줄다리기가 좀 잠잠해지나 했지만, 올 봄에 다시 함양군측이 '변강쇠 자료'를 들고 나와 논쟁의 불길을 당겼습니다.
함양군은 청내 자료실에서 변강쇠전의 지리적 배경이 함양 오도재(悟道峙)로 서술된 1979년 국립창극단 제31회 공연대본이 발견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대본은 국립창극단의 허규(許圭)씨가 썼으며, 직접 연출한 작품이기도 하지요.
그 둘째마당에 다음과 같은 말들이 씌어 있답니다.
'두 년놈(옹녀와 변강쇠)이 지리산중에 찾아가 등구 마천에 이르니', '지리산 등구 마천 강냉이 방아가 웬일인고', '소장은 경상도 등구 마천 산길을 지키는 장승의 아내로써'...등이 그것이에요.

1917년 행정구역 통폐합 이전에는 현재의 함양군 마천면을 '등구마천'이라고 불렀다는 군요.
신재효 선생이 정리한 판소리 여섯 마당에는 '등구 마천 가는 길'로 기술돼 있으나, 창극단 대본에는 '등구마천에 이르니'라고 기술, 오도재 정상이 변강쇠전의 지리적 배경이 확실하다는 것이 함양군 관계자의 주장입니다.

'오도재'는 함양읍에서 전북과 경남의 경계인 팔랑고개를 넘지 않고 지름길로 마천으로 가는 길입니다. 해발 1186미터의 삼봉산과 997미터의 법화산 사이 잘룩한 고개입니다. '속두류록'의 김일손(金馹孫)은 500여년 전 이 고개를 넘어 천왕봉 등정을 했었지요. '오디고개'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지난날 지리산 주민들이 함양장을 보러 넘나든 고개이기도 합니다.
이 오도재가 바로 변강쇠와 옹녀가 지리산으로 찾아든 길이라는 말이 전해오기도 하지요.

함양읍에서 인월쪽으로 가다보면 곧 조동마을이 나옵니다. 지난날에는 제한역(蹄閑驛)으로 불린 곳이 그 입구였지요.
이 마을에서 서남의 한 고개를 넘어가면 휴천면 월평리(月坪里)가 있고, 마지막으로 '살구징이'라 불리는 띄엄띄엄 산기슭에 숨어있는 집들의 마을이 있습니다. 이 살구징이 마을을 지나 오도재로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월평리를 변강쇠의 집터로 추정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변강쇠와 옹녀가) 첩첩 깊은 골짝이 빈집 하나 있어 들어가 사는데 임진왜란 때 부자 하나가 피난해 살았던 집으로 오칸 팔작 빈집이었다.
나무해오라 시켰더니 변강쇠, 장승 뽑아다 패서 때니 성난 팔도의 장승들이 모여 응징을 의논하는데 이 때 관할 구역인 함양 장승이 보고를 한 것으로 미루어 변강쇠가 살았던 집은 지리산의 함양 쪽 기슭임을 알 수 있다.
곧 변강쇠와 옹녀가 살았던 집은 함양이요, 함양에서는 유지들이 모여 전설을 추적하고 왜란 때 피난해 살았다는 구전의 골짝을 찾아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로 그 집터를 추정했다.
그러고서 그 오도재에 변강쇠와 옹녀의 쌍묘를 조영하고 묘제를 올리고 있으며 연휴마다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다 한다.'('이규태 코너' / 변강쇠의 고향)

하지만 남원시측은 전혀 다른 사실을 들어 변강쇠와 옹녀의 연고권을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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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 2004.06.28 11:10
    걸쭉하고 에로틱 한 가루지기타령에서 다뤄진 변강쇠와 옹녀가 이미 특색있는 테마관광거리가 되어가고있는 함양군의 연고주장에 남원시는 어떤 주장으로 대응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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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4.06.28 20:50
    변강쇠의 고향,
    지리산 자락의이야기 이기에 더 정감이갑니다,
    좋은공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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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바다 2004.06.29 09:00
    남원시가 뭐라 반격하였을까요? 궁금해집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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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규 2004.08.16 20:41
    등구라는 지명은 600여년 전 김일손의 두류록에서 이미 등구사, 등구마을 , 등구폭포등으로 묘사 되어 있으며 가루지기 타령(성두본)에도 등구, 마천, 함양장승이라는 뚜렷한 지명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현재에도 등구마을이 존재하고 있으며 마천면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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