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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5618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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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9월20일, 전형적인 맑은 날씨의 가을 하늘은 지리산 피아골을 신선광명의 땅임을 실감나게 보여주었어요.
지리산의 아름다운 자연세계의 감동이 넘쳐나는 가운데 피아골은 큰 경사를 맞이했어요.
지리산 산장 관리인 가운데 '최후의 노총각'인 피아골산장의 함천주(咸天柱, 32세)군이 부산의 여성산악인 오문순(吳文順, 31세)양을 신부로 맞이하여 백년가약을 맺게 된 것입니다.

이 선남선녀의 결혼식은 피아골 마지막 마을인 직전부락의 '마지막 집'인 '구암산장' 뜰에서 야외 의식으로 거행됐습니다. 구암산장 뜰은 산상(山上)이나 다름이 없어 '산상결혼식'을 올린 셈이었어요.
이 식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300여명에 이르는 산악인들이 몰려와 마치 산악인들의 산상축제를 방불케 했답니다.

산악인들이 많이 몰려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지요.
신랑 함천주군은 '노고단 호랑이' 함태식(咸泰式)님의 아들이었어요. 1972년 함태식님이 노고단에 정착했을 때 천주군은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였답니다. 천주군은 그 때부터 방학을 맞이하면 노고단에 올라 아버지와 함께 즐겁고 아름다운 산생활을 체질적으로 익혀왔다네요.

함천주군은 학교를 졸업한 뒤 다른 직장에도 다녔으나 산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곧 지리산으로 되돌아왔답니다. 노고단을 영원토록 지키고자 하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그 자신도 노고단산장에 아주 정착했다는 군요.
하지만 1988년 1월30일 노고단에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영 현대식 3층 건물의 새 노고산장이 준공되는 것과 함께 함태식 부자의 기존 단층 슬라브 노고단산장은 폐쇄되고야 말았지요. 두 부자는 관리공단의 강권에 밀려 피아골 삼거리의 썰렁한 피아골대피소로 옮겨와야만 했던 거에요.

16년 동안 노고단을 지키며 "조용히 그리고 깨끗이"를 외쳐왔던 함태식님은 피아골산장으로 옮긴 이후 한때 실의의 나날을 보냈었지요. 그러다 1991년 가을 피아골산장을 아들 함천주에게 맡겨두고 왕시루봉의 '외국인 선교사 수양관'(일면 외국인 별장촌) 관리인으로 잠적하듯 자리를 옮겼답니다.

함태식님은 왕시루봉에서 노고단에서 밀려난 아픔을 씻고 새로운 힘을 얻어 마음의 안정도 되찾았어요. 하지만 그는 피아골 깊은 골짜기 외로운 산장에 노총각 아들 하나를 쓸쓸하게 남겨놓은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했답니다.
바로 그 아들이 마침내 들꽃같은 산처녀를 신부로 맞이하여 화촉을 밝히게 됐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산남산녀의 결혼식이 열린 구암산장은 피아골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번 기웃거려 보는, 자연석으로 산뜻하게 단장한 건물부터 인상적이었답니다. 이 산장 뜰은 건물 지붕 높이 쯤에서 산 쪽으로 수백평이나 열려 있었어요. 그 뜰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울긋불긋한 등산객의 원색 옷차림이 삼홍소 단풍처럼 아름다운 물결을 이루었답니다.

주례 선생도 등산복 차림이었습니다. 주례는 광주의 '거시기산악회' 회장이자 전국인권변호사회장 이돈명(李敦明, 67세, 전 조선대총장)님이 맡았어요.
"그대들은 지리산 자연의 섭리대로 이 세상을 맑게 가꾸고, 밝게 지키는 등불이 되기를 바라오."
식장에는 한국산악회장 정명식(丁明植)님 등이 보낸 화환이 가득 차 있었는데, 이 자리에 참가한 산악인들의 면면도 아주 다양(?)했답니다.
멀리 설악산에서 '산사람의 경사'를 축하하러 온 권금성산장 유창서, 산사진작가 김근원, 한국등산학교 안광옥, 한국산악회 조두현, 인간문화재 윤병하, 문학평론가 김중하, 동아대산악회 이광전님 등이 있었고, 벽안의 자니 린턴(인요한), 오산 미공군기지의 리즈도 하객으로 참석했어요.

신부 오문순양은 부산에서 지리산을 가장 많이 찾는 여성산악인의 한 명이었어요. 그녀는 언제나 단독산행을 하는데, 홀로 지리산 종주산행을 한 횟수만도 셀 수 없이 많다고 합니다. 그녀는 대원사에서 노고단으로 출발하여 임걸령에 닿으면 계곡 깊숙이 자리한 피아골산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노고단으로 오르고는 하였다네요.
"함태식 선생님께서 노고단을 떠나신 뒤로 쓸쓸해하시는 것같아 일부러 피아골을 찾았었지요."

피아골산장을 지키고 있던 노총각 함천주에게는 홀로 어둠을 뚫고 나타나는 그녀가 꼭 한 송이의 들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아무런 치장이나 가식이 없는 들꽃이야말로 정녕 순수하며 진실한 아름다움이겠지요.
지리산총각 지리산처녀의 결합은 정녕 축복받은 일입니다. 그러기에 전국에서 수많은 산악인들이 몰려들어 피아골 최대의 잔치 한마당을 열게 된 것이지요. 피아골의 잔치, 정녕 아름다운 산악인들의 축제이기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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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 2004.06.02 18:37
    지리산 선남선녀의 축복받을 결혼잔치가 있었군요.
    더구나 함태식선생님의 자제분과 부산의 지리산 처녀의 성혼은 더욱 의미깊은 일이고, 축복의 예를 집전하신 이돈명변호사님도 잔치의 주인이 되셨다는것이 큰 의미로 닥아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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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자요산 2004.06.03 07:34
    함태식선생님에 대해 알고싶었는데 그런사연이 있었군요. 두번 뵌적있어요 다음에 들르면 이야기라고 해봤으면 좋으련만 워낙 무서운 인상이더라구요. 소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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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4.06.03 12:22
    자기몸보다 큰배낭을 메고다녔다는 아가씨이야기를 여산선생님의 칼럼에서 읽은기억이 납니다.
    그시절 날렸던 이현상 남부군사령관의 빨치산유공자 시상식 이후 가장큰 잔치였다면 너무 거창할까요.
    참 성대하고 좋은 산악인들의 축제로 기억될일 이었군요.그 함선생님 자제분은 서울에서 회사에다닌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좋은공부 거듭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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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호정 2004.06.10 00:02
    여산선생님의 방에오면 편안한 서재에 온듯,즐거운 담소 가득한 거실에 앉은듯합니다
    늘 읽어도 기쁘고 유익한 사연과 내용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분위기입니다 피아골 산상의 축제에 함께 기웃거린 듯이 흐뭇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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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友仁 2004.06.21 14:58
    85년인가? 새벽4시에 첫차를 타고- 충무시외버스주차장에서 한창을 기다렸다가- 진주-중산리, 매표소에서 12시 출발- 천왕봉-세석 1박하고, 산장에서 처음 만난 오빠 친구에게 과년한 처녀가 혼자 다닌다고 무지 혼나고, 적어주는 매모쪽지를 간직하고 열심히 노고단 산장에 가서 함천주님께 과분한 대접을 받은적이 있습니다. 며칠천 지리산 이야기중에 얘기했었는데......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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