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5725 댓글 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피아골!
6.25 전쟁 직후 노경희 주연의 <피아골>이란 영화가 나와 피아골이란 이름이 의성어(疑聲語)이기라도 한듯,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를 많이 흘린 살벌한 골짜기'란 느낌을 안겨주기도 했었지요.
물론 피아골이란 이름은 식용 피(稷)를 심는 골짜기란 뜻으로, 마지막 마을 이름을 직전(稷田)으로 부르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래저래 으시시한 느낌이 앞선다는 '피아골'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축제(祝祭)'로 더 돋보이는 지리산의 대표적인 골짜기이지요.
요즘 피아골에선 매년 가을 '피아골 단풍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지리산 단풍을 대표하는 곳이니까 단풍축제가 열리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흔한 단풍축제와는 비교가 안 되는, 특이한 축제가 피아골에서 열렸답니다.
먼먼 옛날, 아주 진귀한 축제가 피아골에서 열렸어요.
그것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불태우는 적나라한 '성(性)의 축제'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겠지요.

먼 옛날 피아골 깊은 곳에 '종녀촌(種女村)'이 있었다네요. 씨받이 여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지요.
이 종녀촌에는 '성신(性神)어머니'라고 불리는 절대자가 많은 씨받이 여인(種女)들과 시동(侍童)을 거느리고 살았답니다.

성신어머니는 인근 마을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집이 있으면 자신이 데리고 있는 종녀를 보내 아이를 낳게 해주고 그 대가로 먹고 살 수 있는 물품들을 받아왔다는 군요.
종녀들은 아들을 낳으면 곧 혈육의 정을 끊고 아이를 넘겨주고 홀로 종녀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종녀가 딸을 낳았을 때는 그 아이를 종녀마을로 데려와선 종녀로 자랄 때까지 키워 성신어머니께 바쳤다고 합니다.
헐벗고 굶주리며 살면서도 씨받이 여인이란 평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종녀들은 어머니에게서 딸로, 그 딸은 다음의 딸로 '씨받이 생명'의 운명을 대대로 물려줄 따름이었어요.

하지만 성신어머니는 '성의 축제'를 즐겼답니다. 그녀는 마음이 내킬 때마다 성신굴(性神窟)에서 성의 제전을 펼쳤지요.
성신굴에는 성신상을 거대하게 새겨놓았고, 그 옆에는 남근(男根)을 새긴 제단이 놓여 있었답니다.
성신어머니는 종녀들의 무궁한 생산 능력을 빈다는 기원제를 핑계로 성신 제단 앞에서 주문을 외다가 주문이 춤으로 변해지고, 마침내 그녀가 시동들과 욕정을 불태우는 향락을 씨받이 여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클라이맥스를 장식했습니다.

종녀들에게는 인내와 체념만을 강요하면서 그녀들의 눈앞에서 질펀한 성의 향락을 적나라하게 연출했으니, 종녀들에게는 너무나 잔인하고 가혹한 성의 축제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물론 종녀촌 이야기는 예부터 전해오는 지리산 전설의 하나입니다.
씨받이 여인들의 얘기는 비록 전설이라고는 하지만, 그 삶의 처절함이 소름 끼치게 합니다.

종녀촌 전설과 대비가 되는 것으로 남도 여인들의 정절의 규범인 '지리산녀(智異山女)'의 애틋한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지리산녀는 구례현(求禮縣)의 여자인데 자색이 아름답고 지리산 아래에서 살았으나 역사에는 그 이름이 전해지지 않았다.
집이 가난하나 부도(婦道)를 다하였다.
백제의 왕이 그 아름다움을 소문으로 듣고 아내로 맞아들이려 했으나 한사코 따르지 아니했다.'(동국여지승람)

'구례현의 한 미모의 여인이 지리산 아래에 살면서 비록 집안살림은 가난하나 부녀자로서 도리를 극진히 지켰는데, 백제왕이 그 여인의 아름다움을 듣고 내궁(內宮)으로 맞아들이려 했으나 여인은 이 노래(지리산가)를 지어 죽음으로써 맹세하고 따르지 아니했다.'('고려사' 악지)

'지리산녀'와 '지리산가'의 주인공은 동일한 여인인데, 미모의 여성이 정절을 지킨 아름답고도 슬픈 사연이지요. 안타깝게도 '지리산가'의 내용은 전해오지 않습니다.
이 '지리산녀'는 '삼국사기' 열전에 기록된 도미 처이며 백제왕은 개루왕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피아골에는 전설의 종녀촌 축제만이 아니라 현실의 아주 독특한 축제도 열렸습니다.
이현상(李鉉相)의 '남부군'이 빨치산 최대의 축제를 이 피아골에서 펼쳤는가 하면, 근래에는 전국의 산악인들이 이곳에 모여 아주 근사한 야외결혼식 잔치 한마당을 열기도 했지요.
그러니까 피아골은 '축제의 골짜기'인 듯도 합니다.
  • ?
    솔메 2004.05.17 15:58
    피아골 ,피밭골(稷田)....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다양하고 축제와 잔치의 전설도 다양하군요.
    저는 80년대 어간에 무등산 부근 출신-문순태님의 '피아골'이라는 소설을 접하고 비록 픽션이지만 연곡사와 피아골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깊은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 ?
    moveon 2004.05.17 19:37
    정말 많은 느낌을 주는 곳이군요. 피아골은. . .
  • ?
    오 해 봉 2004.05.21 01:15
    피아골이 稷田이란것도 재작년에 여산선생님의
    칼럼을보고 알았답니다.전에는그져 6.25 이후생긴
    전투가치열했던 골짜기로 생각했지요.
    선생님덕에 지리산구석구석 좋은공부 감사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2 학사루(學士樓)와 느티나무(2) 5 최화수 2004.08.04 5151
111 학사루(學士樓)와 느티나무(1) 4 최화수 2004.08.03 5243
110 엄천사(嚴川寺) 차향(茶香)(3) 8 최화수 2004.07.29 5683
109 엄천사(嚴川寺) 차향(茶香)(2) 1 최화수 2004.07.23 6045
108 엄천사(嚴川寺) 차향(茶香)(1) 3 최화수 2004.07.21 5945
107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7) 1 최화수 2004.07.15 5448
106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6) 3 최화수 2004.07.09 5983
105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5) 1 최화수 2004.07.08 5518
104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4) 1 최화수 2004.07.06 5678
103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3) 2 최화수 2004.06.30 6190
102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2) 4 최화수 2004.06.27 5986
101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1) 3 최화수 2004.06.13 5972
100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4) 5 최화수 2004.06.02 5618
99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3) 4 최화수 2004.05.23 5625
98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2) 4 최화수 2004.05.19 5185
»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1) 3 최화수 2004.05.16 5725
96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8) 4 최화수 2004.05.03 5677
95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7) 2 최화수 2004.04.16 5186
94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6) 2 최화수 2004.04.09 5747
93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5) 2 최화수 2004.03.17 569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14 Next
/ 14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