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유담(龍遊潭)과 엄천(嚴川)(2)

by 최화수 posted Sep 2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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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유담(龍遊潭)은 용이 노니는 깊은 못이나 강이란 뜻입니다.
용은 깊은 못이나 바다 속에 살지만 하늘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구름과 바람을 일으켜 풍운조화를 부른다는 상상의 동물입니다.
용왕은 용신이라고도 하며, 용의 무리를 거느리고 바다속 용궁에 살지요.
그런데 용이 노는 연못이나 깊은 강은 용소(龍沼) 또는 용유담이라 일컫습니다.

용유담은 지리산 무속(巫俗) 3대 성소(聖所)의 한 곳으로 꼽힙니다.
그래서 지금도 백무동 굴바위와 함께 전국의 무속인들이 끊임없이 찾는 것으로도 이름나 있지요.
무속과 관련된 전설은 엄천사 법우화상이 천왕봉의 천왕성모의 유혹으로 어찌어찌 했다는 것을 '엄천사 차향' 편에서 이미 말한 바 있습니다.

상상의 동물 용(龍)이 무려 아홉마리나 살았다는 용유담.
이곳의 전설 또한 특이하고 흥미롭습니다.
용유담 강변인 마적에 마적도사가 마적사를 짓고 당나귀와 함께 살던 얘기도 그 하나가 되겠네요.

마적도사는 마적사의 식량이나 부식물이 떨어지면 나귀의 등에다 쪽지를 써서 달아주고는 오도재를 넘어 장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시장 장사꾼들은 이 쪽지를 보고 생필품들을 나귀의 등에 실어보내도록 돼 있었다네요.
나귀는 용유담으로 돌아와선 나귀바위에서 울고 소피치면 마적도사는 용 아홉마리를 시켜 다리를 놓아 말이 건너오게 하였다는 거에요.

이와는 달리 용유담에는 나귀바위와 장기판이라는 돌이 있어 마적도사가 쇠도장을 찍어 나귀에게 부쳐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러면 나귀는 어디로인가 가서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을 싣고 왔다네요.
아마도 그 어디는 엄천사가 아니었을까 하고 대개 짐작들을 합니다.

하루는 마적도사가 말을 시장에 보내놓고 장기를 두고 있었어요.
때마침 용 아홉마리가 놀다가 무슨 까닭인지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는 군요.
용유담 건너편에 나귀가 짐을 싣고 와서 울었지만 마적도사는 전혀 알아듣지 못한 채 장기 두기에만 몰두했습니다.
용들이 하도 요란하게 싸워 다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는 거에요.
나귀는 아무리 울부짖어도 반응이 없자 그대로 지쳐 그만 죽고 말았다네요.

나귀가 죽어서 바위가 되었는데, 그 바위가 곧 나귀바위로 불렸습니다.
마적도사는 나귀가 죽자 화를 참지 못하고 장기판을 부서버렸지요.
부서진 장기판 한쪽은 마적에 남이있고, 다른 한 조각은 용유담 건너 나귀바위에 떨어졌다는 거에요.
그래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 마적도사는 아홉 마리의 용 가운데 눈먼 용 한 마리를 남겨놓고 여덟 마리는 모두 쫓아버렸다고 합니다.

그 뒤 송전 주민들은 새 길을 내면서 마적도사가 장기판을 던져 반쯤 깨어져 있는 피묻은 나귀바위를 부득이 폭파하게 되었다네요.
나귀바위를 폭파하자 엄청난 폭음과 더불어 말방울 16개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것은 1300여년 전, 신출귀몰한 도술로써 세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마적도사의 애마인 당나귀의 말방울들이었다는 거에요.

신라 무열왕 기미년(659년) 마적도사는 법화사와 같은 시기에 창건한 마적사를 떠나면서 배나무 한 그루를 절에 심었다고 합니다.
"이 나무가 살아있으면 내가 산 줄 알고, 이것이 죽으면 나도 죽을 줄 알아라!"
마적도사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네요.

용유담 주변의 색다른 전설 한 가지만 더 들어볼까요.
어느 대사가 길을 가던 중 큰 바위 사이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대사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가까이 가보니, 바위 사이에 있는 샘에서 개가 목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대사가 다가가자 개가 갑자기 선녀로 변했습니다.

원래 그곳은 선녀봉이라고 했는데, 이 일이 있은 뒤 비녀봉으로 불렀고 샘은 견습정이라 이름했다네요.
또한 그곳에 절을 지었는데, 절 이름을 선녀암이라 했답니다.
이 절은 일제침탈 시 소실됐지만, 지금도 그 절터와 견습정 우물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