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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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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넘나들던 극한상황에서도 축제는 펼쳐졌답니다.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은 피아골에서 군경을 많이 사살한 빨치산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했는데, 그것을 기려 모닥불을 돌며 '춤의 축제'를 펼쳤다고 하네요.
이태(李泰)의 표현처럼 '소름이 끼치도록 야성적'이어서 놀랍지요.

이태의 <남부군>은 '피아골 축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습니다.  

'최문희라는 문화지도원이 각색 연출한 <엉터리 곡성군수>라는 코미디 촌극도 공연되었다...
문화지도원 최문희는 동작이 활달하고 격정적인 인상의 20대 여인이었다. 평양에서는 오페라 <칼멘>의 칼멘 역을 맡았던 유명한 오페라 가수이며 공훈배우였다고 한다.
그녀는 등사판으로 <50곡집> <20곡집> 등 가사집을 만들어 대원들에게 배부하고 틈틈이 노래 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우리는 기억력 좋은 이 여인으로부터 주로 러시아 것을 번역한 군가와 가요를 수십 가지 배웠다.'

그로부터 수십년의 세월이 지난 1989년 10월7일, '피아골 축제'의 '최문희 여인'을 필자는 치밭목대피소에서 만나게 됩니다.
'최화수의 지리산 통신' 제90호 '치밭목의 남부군 여인'에 그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

[(전략)
자정이 지나면 음력으로 9월9일이었다. 음력 9월9일은 숨진 날짜도 모르는 모든 원혼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10년째 매년 이날 지리산을 찾아 수많은 원혼들의 넋을 달래느라 제사를 모시는 한 여인이 있다고 했다. 더구나 그녀는 저 유명한 '남부군' 간부였단다.
남부군 간부로 지리산에서 투쟁하다 살아남은 여성이 음력 9월9일 지리산 그 처절했던 격전의 현장을 찾아와 고혼들에게 제사를 모신다고 했다.
(중략)
필자는 밤 늦은 시각에 치밭목산장에 도착했다.
자정이 되자 어둠 속에 산장의 문이 조용히 열리고 제물들이 소리없이 밖으로 운반되기 시작했다.
통돼지를 비롯하여 생선 떡 막걸리 과일 밥 나물 등으로 제사상 차리기가 끝났다.
소복을 입은 한 여인이 제문을 읽고 술을 올린 뒤 큰절을 올린다.
그리고 그녀는 장승처럼 우뚝 선 채 캄캄한 지리산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중략)
치밭목산장의 '남부군 여인'! 그녀는 과연 누구일까?
그녀의 치밭목 제사 정보를 필자에게 은밀히 알려준 민병태 산장지기는 이렇게 들려주었다.
이름은 최순희, 나이는 칠순이 가까운 60대 후반, 주소는 서울, 직업은 없고 음악 레슨으로 생계 유지, 출생지는 러시아, 학력은 러시아에서 수학하다 일본의 음악대학을 졸업했다는 것 등이었다.
그녀가 민병태씨에게 말한 한마디가 정말 감동적이었다.
"나는 지리산에서 숨진 빨치산은 물론이요, 토벌 군경, 요즘의 등산객 가운데 조난당한 사람들의 넋까지 함께 위로하고자 한다. 모두가 똑같은 한민족인 때문이다."
그녀가 사라진 뒤 나는 비로소 가슴을 쳤다.
"'피아골 축제'의 바로 그 여인이다!"
이태의 '남부군'에 '피아골 축제' 얘기가 실려 있다.
'피아골의 그녀'가 바로 '치밭목의 그녀'란 사실을 필자는 그녀가 사라진 뒤에야 깨우친 것이다.
그 얼마 후 영화 '남부군'이 만들어졌을 때 필자는 이태씨를 직접 만나 피아골 축제의 그녀가 치밭목의 바로 그녀란 사실을 확인했다.
(후략)]

이현상의 상훈수여식을 위한 피아골의 축제, 그 축제를 주도했던 문화지도원 '남부군 여인'을 치밭목산장에서 만나다니요, 필자에게도 그 기막한 인연이 불가사의하기조차 합니다.
지리산은 어머니의 품과 같지요. 그 큰 품에 안겨 있는 민족의 한과 기막힌 사연과 사연들은 실타래처럼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을 거에요.

이 피아골에서 '야성의 축제'(?)만 열렸던 것은 아닙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산사람들의 산정(山情)으로 엮어낸 아름다운 축제도 열렸답니다.
1992년 9월20일, 필자는 산남산녀(山男山女)의 멋진 축제를 지켜보기 위해 이른 아침 전세버스편으로 부산을 출발했습니다. 부산의 산악인 40여명도 피아골 잔치를 지켜보기 위해 함께 나섰던 거지요.
  • ?
    오 해 봉 2004.05.24 22:45
    1992.9.20.산남산녀의 축제는무슨 축제 였는지요.
    지리산에서 숨진 빨치산은물론 토벌군경 조난등산객의 넋까지 위로하고자 제사를 지낸다는 남부군
    간부였던 여자빨치산 최순희 할머니의말에 공감이가며 그분이 지금도 지리산자락 어디에서 제사를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좋은공부 감사드립니다.
  • ?
    솔메 2004.05.27 16:24
    그분이 바로 문화지도원 최순희였군요..
    책과 영화를 다 보았지만,
    지리산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상징적인 인물을 치밭목에서 직접 만나셨군요..
  • ?
    섬호정 2004.05.30 23:01
    치밭목산장의 여인 , 피아골축제' 최순희 할머나의 동족위령제사가 뜻 깊습니다.세월이 지나 이념도 흘러바닷물이 되버렸군요.역사의 현장감을 알려주셔 고맙습니다
  • ?
    솔메 2004.05.31 16:25
    섬호정 선생님, 안녕하신지요?
    치밭목위령제 행사에 맞춰서 선생님과 함께
    답사산행 한번 했으면 좋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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