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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569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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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왕시루봉은 그야말로 자연의 천국이었습니다.
잣나무 등의 수림 사이로 파란 융단과도 같은 풀밭이 펼쳐져 있었고, 거기에는 요정과도 같은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나 있었습니다.

노고단에서 피아골로 밀려나 몇 해 동안 상심의 나날을 보냈던 함태식님이었지요.
하지만 왕시루봉 '왕증장'의 그이는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동심의 세계에 물들어 있더군요.

1992년 5월31일 왕시루봉의 함태식님.
그이가 당시 얼마나 순수한 낭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한 에피소드기 있답니다.

그것은 바로 그곳 풀장에 그이가 만들어둔 '나무 작품'(?)이었지요.
그 부분의 이야기는 필자의 졸저 <나의 지리산 사랑과 고뇌>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그 얘기를 이곳에 옮겨도 되겠는지...한동안 망설이던 끝에...) 그대로 여기에 옮겨봅니다.

[...왕증장의 함선생은 아주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는 우리들을 기쁜 마음으로 맞아주었다.
나 또한 그가 피아골산장 때보다 훨씬 더 밝은 표정을 지니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정녕 기뻤다.

함선생은 길쭉한 막대기 끝에 매단 쪽박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날더러 빨리 따라오라고 했다.
바로 뒤편의 풀장 한편에는 '人'자 형상의 나무를 세워놓고, 그 가운데 '자지' 모양의 나무토막을 달아놓았다.
거기에 파이프를 연결하여 풀장으로 흘러드는 물이 자지가 오줌을 싸서 떨어지는 것과 똑같이 해두었다.

함선생은 막대 끝의 쪽박을 내밀어 '나무 자지' 끝에서 떨어지는 오줌이 아닌, 생수를 받아선 나에게 건네주며 마시라고 했다.
아, 그 물은 무척이나 달고 시원했다. 그보다 나는 '나무 자지'의 아주 리얼한 모양 때문에 킬킬 새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어때, 피로가 싹 가시지?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한 사람의 피로를 잊게 해주려고 내가 저 자지를 만들었다구. 다음에 올 때는 더 큰 것을 갈아끼워 놓을 테니까!"
"헛헛..."
나는 재미있기도 하고, 좀은 민망하기도 하여 헛웃음만 흘렸다.

함선생은 나의 생각 따위는 상관할 바 없다는 듯이 더 큰 소리로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저 자지가 색을 쓴단 말이야. 색 쓰면 물줄기가 힘을 얻어 멀리 떨어진다구!"
"과연!"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풀장으로 흘러드는 물의 수원은 숲속 어딘가에서 솟아나온다고 했다(왕증장 일대는 계곡이 없다).
그 물은 유입량이 시시각각으로 달랐다. 유입량이 많아질 때는 '나무 자지' 안의 구멍에서 압력을 받아 멀리 뻗어나갈 힘을 얻도록 해놓은 것이다.

함선생이 이곳 왕증장 숲속에서 홀로 조용한 자연세계의 자연인으로 생활하면서 '나무 자지'를 깎아 달고, 파이프를 연결해 놓고 "색쓴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나는 문득 화가 이중섭의 그림이 생각났다.
6.25동란으로 피란한 이래 부산에서, 통영에서, 제주에서 게들과 어울렸던 이중섭의 천진난만한 동심 세계가 함선생에게 그대로 옮겨져 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나무 자지'를 만들어 놓은 함선생의 그 천진함이 너무 좋았다.
나는 쪽박을 받아들고 내 손으로 또 한번 '나무 자지' 끝에 내밀어 달고 시원한 물을 받아마셨다.

함선생은 다시 나를 숨돌릴 겨를도 없이 왕증장의 부엌으로 끌고 갔다.
좁은 부엌바닥에선 함선생의 일을 돕고 있는 여성 산악인 한명이 취나물을 버무리고 있었다.
"당신이 여기 온다는 연락을 받고 아침에 부드러운 취나물을 일부러 뜯은 거야. 자, 이 산나물로 소주 한잔씩!"

"캬아!"
나는 그 됫병의 소주, 아니 '무애주' 맛과 된장으로 버무린 취나물의 상큼한 향기를 영원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의 그 무엇이 이보다 더 좋으리오!

함선생과 나는 취나물을 버무리고 있는 바로 옆에 아주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는  이광전선생이 나머지 일행을 이끌고 닿기 전에 한 잔이라도 더 많이 마시고자 했다.
"캬야!"
"캬야!"...]
  • ?
    허허바다 2004.03.17 19:05
    함선생님은 정말 모든 것에 관하여 거리낌 없이 표출함으로써 자유를 만끽하고자 하셨던 것 같군요...
  • ?
    솔메 2004.03.18 09:37
    하하하..

    거칠것없는 자연속에서
    무애인들이 함께모여 무애주에 깊게 녹아드는
    순수자연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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