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10526 댓글 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8척 장신의 거구에 미남자인 인요한은 주말이 되면 가족들과 함께 왕시루봉 수양촌을 찾고는 했지요.
그이는 멀리 서울에서 손수 차량을 몰고 구례군 토지면 왕시루봉 기슭에 닿은 뒤, 수양관까지 3시간이 걸리는 산길을 걸어올랐습니다.
이 때 무거운 짐은 가족들이 공평하게 나누어지고 오릅니다. 그들은 한국인 누구에게도 짐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인요한의 부인은 한국인으로 치과의사이면서 화가로도 이름 높은 이지나입니다. 이들 부부 사이에는 두 딸이 있는데, 한나와 에스터란 이름을 갖고 있어요.
1992년 당시에는 아직 나이가 어렸는데, 아주 이쁘고 깜찍한 용모에 아버지를 닮아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하고 있었지요.

인요한 가족들은 왕시루봉 수양촌에 도착하면 한국인 관리인의 건강부터 돌본 뒤, 여러 목조 건물의 보존 상태를 체크하고, 필요한 경우 직접 손질을 합니다.
그이는 왕시루봉 외국인 선교사 수양관을 책임관리하면서 많은 일을 했습니다. 국립공원측과 연습립 사용기간을 5년씩 연장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순천지청에 노고단의 조차계약이 왕시루봉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판단을 얻어내기도 했어요.

인요한은 손수 전기톱을 들고 나서 오솔길을 만들기도 했고, 갖가지 프로그램의 선교사업을 열기도 하였지요. 그는 또 별로 이용하지 않는 테니장을 폐쇄하는 한편, 여름철과 겨울철에는 외국인학교 학생들의 단체수련회를 여는 등으로 왕시루봉 수양촌을 값지게 이용하기도 하였어요.

인요한은 지난 1984년 아버지 인휴가 교통사고로 타계하고 형인 스티브마저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일하게 되면서 자연히 왕시루봉의 선교사 수양관을 계승한 주인공이 되었어요.
그는 자신의 오두막 뿐만아니라 주인들의 발길이 뜸해진 다른 오두막들을 온전하게 보존해야 하는 의무 때문에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지리산을 찾았던 거에요.

왕시루봉 선교사 수양촌은 지난 1962년 건립 다음해인 63년부터 91년까지 무려 30년 가까운 세월을 전남 승주군 출신의 이강협 가족이 관리를 해왔습니다.
그이는 40대 초반에 가족과 함께 왕시루봉에 입산(?)하여 7순 노령이 되어 하산,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지요.
그 사이 함께 왕시루봉에 입산했던 아내가 세상을 떠났고, 따님마저 출가를 하여 말년의 이 노인은 '두개'란 이름의 진도개와 쓸쓸하게 살았답니다.

이강협 노인이 떠난 뒤 이곳의 관리인으로 바톤 터치를 받은 이는 뜻밖에도 지리산에선 너무나 이름난 '노고단의 터줏대감' 함태식 선생입니다.
그이는 지난 1971년 노고단에 40평 짜리 단층 '노고단산장'이 지어진 뒤 그 주인이 되어 16년 동안 지켜오다 88년 1월9일 3층의 현대식 새 '노고산장'이 준공되는 것과 함께 피아골 대피소로 밀려났었지요.

1991년 11월5일, 30년 관리인 이강협 노인에 이어 함태식 선생이 왕시루봉의 외국인 선교사 수양관 관리인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구례 출신의 그이는 여순사건 여파로 노고단의 선교사 수양관이 잿더미가 된 뒤 전쟁이 끝나자 가장 먼저 노고단에 올라 벽체만 남아있는 한 곳을 택해 산장 재건의 꿈에 부풀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노고단의 외국인 선교사 수양관과 짧은 인연을 맺기도 했던 그이는 그러나 자신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왕시루봉의 외국인 선교사 수양촌을 지키면서 노고단에서 밀려난 울분을 달래게 되었던 것이지요.
어쨌거나 그이가 왕시루봉으로 옮겨옴으로써 이곳 수양촌은 유례 없는 활기를 찾게 됩니다. 왕시루봉에 산악인의 멋과 낭만, 우정이 꽃피게 되는 것이지요.
  • ?
    김현거사 2004.01.21 09:41
    40대 초반에 왕시루봉에 입산하여 '두개'란 진도개하고 30년을 살고 아내를 여의고 70세에 하산한 이강협님과 그 뒤를 이은 '노고단 터줏대감' 함태식님은 다큐멘타리 영화륵 찍어도 훌륭한 것이 나올만한 분이군요.
  • ?
    허허바다 2004.01.21 11:08
    초승달 아래 잔잔히 흐르는 섬징강과 같은 나레이션이 초저녁 나즈막히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 ?
    월전 2004.01.24 20:39
    인선생님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몇 번 뵈었습니다.거구의 몸에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 참으로 좋으신 분입니다. 예전에 북한 가신거 테레비젼에 나왔던거 같은데.이화여대
    의대 출신 북한 여의사님과 재미있게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기억나네요.한시간짜리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만 주의 깊게 보질 못했네요.
  • ?
    솔메 2004.01.26 13:27
    오늘날의 왕시루봉 선교유적은 인선생 가문의 정성뿐 아니라 승주출신의 이강협 옹과 구례출신
    함태식선생의 노고가 함께 어우러져 있음에 한층 감동을 주는군요.
    그곳에 얽힌 지리종주챔피언(124회)- 이광전선생님과 최화수선생님의 일화도 곁들여 소개해주시기를 청해 올립니다.
  • ?
    구례 2010.04.27 16:08
    저 서양인 별장들 빨리 지리산에서 철거 되어야 할텐데...신성한 지리산이 저런 양인들이 지은 건물들로 인해 더럽혀지는게 안타깝습니다. 자연은 자연그대로고 좋습니다. 이제 그 용도도 끝났으니 다시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찾길 기대해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2 얼룩 번져나는 '섬진강 그림'(1) 8 최화수 2003.10.27 5492
191 얼룩 번져나는 '섬진강 그림'(2) 9 최화수 2003.11.03 5453
190 얼룩 번져나는 '섬진강 그림'(3) 8 최화수 2003.11.10 5907
189 왕시루봉의 '선교 유적지'...(1) 9 최화수 2003.11.25 8816
188 왕시루봉의 '선교 유적지'...(2) 10 최화수 2003.12.12 7003
187 왕시루봉의 '선교 유적지'...(3) 6 최화수 2003.12.28 8768
186 왕시루봉의 '선교 유적지'...(4) 8 최화수 2004.01.09 8793
» 왕시루봉의 '선교 유적지'...(5) 5 최화수 2004.01.20 10526
184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1) 4 최화수 2004.02.10 9454
183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2) 4 최화수 2004.02.15 6863
182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3) 3 최화수 2004.02.26 5826
181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4) 5 최화수 2004.03.07 5820
180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5) 2 최화수 2004.03.17 5699
179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6) 2 최화수 2004.04.09 5747
178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7) 2 최화수 2004.04.16 5186
177 인휴대(印休臺)의 낭만시대(8) 4 최화수 2004.05.03 5677
176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1) 3 최화수 2004.05.16 5725
175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2) 4 최화수 2004.05.19 5185
174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3) 4 최화수 2004.05.23 5625
173 잔치잔치, 피아골의 대축제(4) 5 최화수 2004.06.02 561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 Next
/ 14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