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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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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신령'으로까지 불리는 우천 허만수님은 어떤 인물일까요?
그이의 남다른 발자취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화제가 되고 있지요.
그이를 지극히 존경하는 또 한 사람의 `지리산 도사'인 `산에 미친 사람' 성락건님은 지금도 그이의 유해를 찾기 위한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을 정도이니까요.

우천 허만수님은 1916년 경남 진주시 옥봉동에서 태어났는데, 일찍 일본에 유학을 갔을 만큼 좋은 가문에서 성장했지요.
그이는 일본 입명관(立命館) 중학 시절에 산과 첫 인연을 맺게 됩니다.
그 학교에는 '동정(童貞)클럽'이라는 등산반이 있었는데, 회원 전체가 산을 즐기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색다른 규칙이 있었다네요.

허만수님은 이 '동정클럽'에 가입하고부터 본격적인 등산을 사작하게 되었어요.
그이는 산에 미쳐 대학 진학도 안중에 없었나 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동정클럽'의 그 규칙 때문에 여자도 가족도 내팽개친 채 지리산으로 들어가 야생의 생활로 일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런데 우천의 부모는 산에 미친 아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비상수단을 강구했지요.
그것이 바로 결혼을 시키는 것이었어요.
22세가 된 허만수를 일시적으로 강제 귀국시켜 강제 결혼을 시켰답니다.
그이는 부인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또 전문학교를 졸업했어요.

허만수님은 나이 29세 때 해방을 맞게 돼 일가족이 귀국했답니다.
부인과 딸 셋을 데리고 고향에 돌아온 그이는 진주시에서 '대동'이란 서점을 냈어요.
하지만 산에 이미 정신이 팔린 그이가 서점을 제대로 꾸려갈 수가 없었지요.
2년만에 서점 문을 닫은 그이는 차라리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가족을 내팽개친 채 산을 찾기 시작했답니다.

허만수님은 31세 때 산을 잊어달라는 부인의 애원도 뿌리치고 영영 집을 떠납니다.
집을 나선 그이가 처음 찾은 곳은 의령 자굴산이었어요.
자굴산 정상 부근에 땅굴을 파고 그는 원시인과 다름없는 산생활을 시작한 것이지요.
이렇게 자굴산에서 2년여의 세월을 보냈답니다.

그 다음으로 옮긴 곳이 바로 지리산 세석고원이었다네요.
고원 한편에 토막집을 짓고 본격적인 야생 생활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이가 집을 나선 지 4년째가 되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부인이 이 세석고원의 토막집을 찾아왔어요.
부인은 사흘 동안 남편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했답니다.

하지만 우천 허만수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나는 이미 산에 미친 사람이니 단념하라"는 것이었지요.
결국 부인은 하산 설득을 포기하고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답니다.
(이상 허만수님의 발자취는 이종길 지음 '지리영봉'에 이미 소개한 것 가운데 발췌한 것입니다.)

사진으로 전하는 우천 허만수님의 모습은 1961년 태풍 너로호 내습 때 부산의 언론인 김경렬님이 하천 도하 도움을 받으면서 촬영한 것이 있지요.
그런데 필자에게 우천 선생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촬영한 사진을 제공한 이는 진주 경상대학교에 근무하는 홍성국님입니다.
홍성국님은 1974년 2월 세석산장 앞에서 허만수님과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을 했는데, 바로 그 사진입니다.

우천이 모습을 감춘 것은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난 1976년 6월입니다.
필자의 대하르포 <지리산 1994>, 또는 분책 <지리산>에 이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아마도 이 사진이 우천 허만수님의 최후의 사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 사진을 촬영한 그해 12월18일, 필자는 법계사 초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는데, 그 때 밥을 지어주던 이가 바로 우천 허만수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뇌리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답니다.
  • ?
    오 해 봉 2006.06.13 13:08
    여산 선생님이글을 여러곳에서 읽었는데 법계사 청화보살님과
    말이통하고 절친하였던 우천님이 맞을것같은 생각입니다,
    그 겨울 눈속에서 법계사라도 와야만 사람구경을 할수있을 테니까요.
  • ?
    최화수 2006.06.13 18:07
    당시 법계사 초막과 손보살, 허우천의 일화는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지리산이 평정된 이후 초기 지리산 등반에 나섰던 이들이 아주 많은 얘기들을 들려주더군요.
    오해봉님에게 늘 감사하고 있답니다.
  • ?
    김용규 2006.06.13 18:50
    궁금한 것 하나는 허만수님께서 빨치산 같은 생활을 하신 분이신데 산속에서 문명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셨다면 가끔 꼭 필요한 생활 필수품들은 어떻게 조달하였을까요? 산이 좋아서 산속에서 생활을 하셨다고 하여도 인간인 이상 느껴지는 심한 고독감이 밀려 왔을 법도 한데 어떻게 견뎌 냈을까요? 평범하고 단순한 차원에서 생각해 보노라면 고 차원의 삶을 사셨던 분 같습니다.
  • ?
    선경 2006.06.20 11:20
    순수한 자연과 더불어 말로만이 아닌 체험속에서 늘 산에살고 있는
    모든것들과 진정한친구되어 지리산과 함께하신 허만수님~~~
    지금도 그의 아름다운 지리사랑의 넋은 산행을 하시는 모든분들을
    보살펴주시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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