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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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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임술년 2월4일, 지리산 자락인 경상도 단성에서 농민들이 환곡(還穀, 양곡 대여) 등의 폐단에 저항하여 집단봉기를 합니다. 이 단성민란은 임술년 농민항쟁의 서곡으로, 진주농민항쟁 등 전국의 5개 도 37개소로 들불처럼 번져나간 농민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이지요. 삼정(三政)의 문란, 특히 환곡의 폐단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단성향교 향회를 중심으로 뜻을 모아 거사를 한 거예요.

당시 단성은 지리산 기슭에 자리한 작은 읍이었습니다. 물 맑고 비옥한 토지로 신선이 살만한 살기 좋은 곳(단구성)이었지만, 환곡의 폐단이 극심했어요. 춘궁기에 농민에게 양식을 빌려주었다가 추수기에 되돌려 받는 곡식이 환곡인데, 그 과정에 관리들의 갖가지 수탈이 엄청났던 것이지요. 단성 지역의 환곡은 18세기 중엽까지 1만석을 넘지 않았으나 19세기 초에는 3만석에 이르렀고, 1855년에는 10만석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단성 지역에 환곡이 이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관리들의 조직적인 수탈행위 때문이었지요. 지방 관리들의 횡포에 대한 단성주민들의 집단적인 저항은 거사 한 해 앞인 1861년부터 불붙기 시작했어요. 중앙관리 출신인 김인섭(김령의 아들)은 감사와 현감에게 읍폐의 교정을 건의했어요. 경상감영에서 이무미(移貿米) 3000석 감결 결정과 이서들에 대한 징벌 조처가 내려졌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임현감 임병묵이 이것을 다시 횡령하는 일이 발생했어요. 이에 흥분한 사족과 농민들이 마침내 관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게 되는 것이지요. 1862년 1월4일 사족 대표들이 청심정에 모여 회의를 열었고, 1월9일에는 읍민 500여명이 모여 탐학한 관리들을 성토하기 위해 감영에 소장을 올리기로 결정합니다. 김령 등이 대구의 감영을 찾아 시정을 요구했어요. 하지만 단성현감 임병묵은 곡식을 단성민에게 돌려주라는 감영의 명령을 거역하게 됩니다.

이에 격분한 단성민들은 1월25일 단성향교의 향회를 열고 본격적인 투쟁을 준비했어요. 2월4일, 사태가 심상찮은 것을 감지한 현감은 감영으로 도망치다가 읍민들에 의해 붙잡혔어요. 단성읍민들은 이방과 창색리의 집을 불태웠어요. 농민들로부터 구타의 수모를 당하던 현감이 달아나면서 관리들이 흩어지자 사족들이 고을의 권력을 장악합니다. 이들은 매일 향회를 열고, 좌수와 이방을 선출하는 등 행정체계를 정비해 나갔습니다.

단성의 행정을 장악한 사족들은 중앙의 조정에 대해 직접 대궐 앞에 나아가 엎드려 상소하기로 했어요. 4월 중순 한양으로 올라가 비변사에 호소하고, 감영에도 계속 환곡의 폐단 해결을 요구했답니다. 하지만 환곡 등의 폐단에 대한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항쟁을 주도한 이들에게 처벌을 내린 것이에요. 하지만 단성농민항쟁은 진주농민항쟁을 비롯하여 임술민란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으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임술년 농민항쟁은 단성에 이어 바로 이웃한 수곡장터와 덕산 등 지리산 자락에서 들불처럼 계속 번져나게 됩니다. 진주농민항쟁도 지리산의 수곡장터와 덕산에서 본격적인 기치를 올린 것에 특징이 있지요. 훗날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자 지리산 기슭 하동은 호남지방과 조직적으로 연대했고, 진주 일대도 그 횃불을 이어받습니다. 지리산의 농민봉기, 그 함성은 계속 번져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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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호정 2007.03.06 15:59
    지리산 일대의 영남 서부~ 농민항쟁사를 올려주시니 기대와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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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7.03.06 20:14
    140 여년전에 단성에서 그런 농민항쟁이 있었군요,
    임병묵 현감도 고부군수 조병갑과 똑같은者 이군요,
    여산 선생님 좋은공부 항상 감사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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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2007.03.13 19:42
    그 옛날 봉기나 의병이 일어남에 있어 나라 동쪽보다 서쪽에서 그 수가 훨씬 많더군요. 왜 그럴까요? 곡창지대라 관리의 횡포가 더 심할 수도 있겠다싶긴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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