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6350 댓글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만추의 일요일 하루, 홀로 지리산 옛길을 걸어보고자 했습니다. 세이령, 대굴령, 고치령 등과 함께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지리산 회남재를 넘어가보기로 한 것이지요. 11월19일, 악양으로 갔지만 옛길 대신 자동차 도로로 들어섰어요. 악양으로 가는 길에 다른 급한 일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시간에 쫓겨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악양에서 회남재로 오르는 아스팔트 포장길에는 차량이 거의 다니지 않았습니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이유가 있었어요. 수해로 허물어진 등촌마을 뒤편 도로 곳곳의 복구작업 관계로 차량 통행 금지 팻말이 세워져 있더군요.

복구 공사가 끝나고 새로 포장한 곳에선 아스팔트와 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손도 대지 못한, 도로의 폭 절반 가량이 허물어진 채 볼성사나운 꼴을 하고 있는 곳도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산길을 내는데 혈세를 쏟아붓고, 복구공사를 하는데 또 돈을 쏟아붓고...기가 막힙니다.

도로 확포장 구간이 끝난 곳부터는 종래의 임도가 연결돼 있습니다. 임도로 들어서자 만추의 농염한 기운이 넘쳐났어요. 떡갈나무도 낙엽송도 마지막 가을의 빛깔 잔치를 벌이고 있었고...형제봉과 칠성봉 능선에서 부채살처럼 퍼진 산자락이 가을 노래 합창이라도 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어찌 된 일일까요? ‘통행금지’를 무시한 승합차가 잇따라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갯길을 치고 오릅니다. 아, 그런데 이번에는 어린이의 톡톡 튀는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젊은 부부가 초등학교 저학년 아들 딸의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더군요.  자동차가 헉헉거리며 오르는 것과 대비가 되는, 아름다운 정경이어서 감탄했답니다.

다음 글은 11월21일자 국제신문 [최화수의 세상읽기]에 실은 ‘회남(回南)재 단상’이란 제하의 칼럼입니다. 졸문이지만 이곳 ‘지리산 산책’에 옮겨 싣습니다.
...............................................................................................................

만추의 휴일 하루, 혼자 걷고 또 걸으면 어떨까. 여러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인의 여유를 갖는 것도 좋겠다. 사색의 세계로 침잠하려면 숲에 묻혀 있는 옛길이 좋다. 우리는 때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런 아쉬움을 오랜 세월 수많은 길손의 애환, 민초들의 정서가 서려 있는 옛길이 달래준다.

세이령, 한계령, 대굴령(대관령), 고치령, 죽령, 회남(回南)재, 굴목이재 등이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이름난 옛길이다. 그 가운데 부산과 가장 가까운 곳은 회남재이다. 경남 하동 악양과 청학동을 잇는 지리산의 많은 고갯길 가운데 하나이다. 시루봉과 칠성봉 사이의 이 고개는 묵계 사람들이 하동장에 오는 길이자 악양에서 청학동으로 걸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회남재 옛길은 악양면 덕기마을에서 시작된다. 경사가 가팔라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세 번씩 숨을 쉬어야 한다 하여 '삼아령(三阿嶺)'이라고도 불렀다. 실낱처럼 남은 옛길의 희미한 흔적마저 무성한 수림에 막혀 있다. 작심을 하고 찾는 산꾼이 아니면 아예 발길조차 들여놓으려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회남재를 아주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도로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타고 회남재를 넘는다고?" 한 걸음 떼는데 세 번 숨쉬는 옛길을 오랜 세월 무거운 등짐을 메고 오르내린 길손들은 저승에서도 기절초풍을 할지 모를 일이다. 산줄기를 굽이굽이 감돌아 찻길을 넓히고, 산허리에서 터널을 뚫어 자동차가 질주하는 요즘 세상이다. 대굴령, 한계령도 자동차가 핑핑 넘나드는데 회남재라고 자동차가 못 오를 이유가 없다는 것일까.

회남재라는 이름은 남명 조식 선생이 이곳에 올랐다가 악양이 길지(吉地)가 아니라며 발길을 돌렸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회남재 일대는 금낭화가 지천으로 피는 등 생태자연 Ⅰ, Ⅱ등급을 자랑한다. 지금도 만추의 농염한 빛깔이 현란한 그림을 그려보인다.

회남재로 넘나들던 민초들의 애환은 또 어떠한가? 보부상과 장꾼들만이 아니다. 빨치산의 보급 루트였고, 양민들이 그 짐을 나르기도 했다. 악양 사람들은 일제(日帝)의 공출 닦달에 쫓겨 이 고개를 오르내리며 관솔을 땄고, 심지어 머루넝쿨 공출에 시달리기도 했다.

회남재에 세운 이정표는 악양 10.6㎞, 묵계 4.3㎞, 청학동 6.4㎞로 씌어 있다. 청학동 삼성궁까지 8㎞가 비포장 구간이다. 악양쪽 포장도로는 회남재 1.6㎞ 못 미친 곳까지 확포장을 한 것이다. 하동군은 평사리 최참판댁과 청학동을 잇는다며 지난 1993년부터 야금야금 길을 내기 시작, 시민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회남재 턱밑까지 아스팔트 도로를 열어 놓았다.

우리 선조들은 짚신과 봇짐을 메고 천천히 길을 걸으며 자연과 가까이 했다. 속도가 느려야 더 자세하게 볼 수 있고, 자연과 가까워질 수 있다. 자동차로 빠르게 질주하면 허상(虛像)밖에 볼 수 없다. 역사의 맥박과 선인들의 숨결도 걸어가야 느낄 수 있다. 회남재도 자동차 도로가 아닌 사람의 길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역사 문화 자연 탐승로의 '생명의 길'로 살아나야 한다.

관청에선 관광을 위해, 주민 소득 증대를 위해 산을 넘는 도로를 낸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회남재 도로개설반대 주민대책위 의장은 청학동 주민 김삼주 씨다. 그이의 말이 모든 것을 시사해준다. "도로가 난다고 우리가 좋아할 것 같은가?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을 지키고 싶다. 자동차를 타고 산을 넘어다니는 관광객은 쓰레기나 버릴 뿐이다."
  • ?
    섬호정 2006.11.22 22:09
    회남재에서 청학동을 오르는 자동차는 청정한 자연을 오염하며
    신나게 달리기를 하겠지만...오랜 우리 선조들이 민초의 삶을 잇기위해
    화개장을 오가던 길이라고도 하니... 곳곳에 그 역사의 흔적이라도
    엿보이길 바랍니다 만추의 회남재 픙경을 열심히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합장
  • ?
    섬호정 2006.11.22 22:12
    여산 선생님 이 글로 하동인들의 고장 가꾸기에
    방향을 깨우치게 하고도 싶습니다 글 좀 모셔갑니다
    깊은 양해를 바라오며 합장
  • ?
    오 해 봉 2006.11.22 22:35
    제작년에 형제봉으로해서 회남재로 내려와 봤습니다,
    명성 그데로 추억속의 옛길 그데로 드군요,
    길위 송신소 에서보니 우측은 악양이고 좌측은 청학동 이드군요,
    굽이 굽이 돌아서 내려오니 아스팔트길이 만들어져 있드군요,
    지금도 덤프트럭이나 찝차는 다닐수 있겠기에 조만간에 아스팔트가
    깔리겠구나 하면서 왔답니다,
    그 길이 그데로 보존될런지 궁금 합니다.
  • ?
    선경 2006.11.24 01:19
    늦가을의 회남재의풍경이 그려지는 그런 아늑한오후입니다
    금낭화가 지천으로 피는 자연생태의 아름다움이 영원한 산책의길로
    남으면 얼마나 좋을까요~~~추억속에 옛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2 들불처럼 번져나간 농민항쟁(1) 3 최화수 2007.03.05 5163
191 '지리산 정신' 산실 단성향교 6 최화수 2007.02.15 7842
190 '한 번 청산에 들면 다시는...' 5 최화수 2007.01.30 5349
189 반달가슴곰 복원사업 딜레마(2) 8 최화수 2007.01.09 5920
188 반달가슴곰 복원사업 딜레마(1) 6 최화수 2006.12.30 5549
187 운조루의 '타인능해(他人能解)' 5 최화수 2006.12.13 5875
» 만추의 회남재를 걸어가면... 4 최화수 2006.11.22 6350
185 사성암에서 행복을 얻었네요 5 최화수 2006.10.26 6322
184 '옹녀 묘'에서 '춘향 묘'까지(4) 5 최화수 2006.09.17 6535
183 '옹녀 묘'에서 '춘향 묘'까지(3) 4 최화수 2006.09.02 6843
182 '옹녀 묘'에서 '춘향 묘'까지(2) 3 최화수 2006.08.15 6457
181 '옹녀 묘'에서 '춘향 묘'까지(1) 3 최화수 2006.07.30 7041
180 '지리산 산신령' 우천 허만수(7) 3 최화수 2006.07.14 6954
179 '지리산 산신령' 우천 허만수(6) 4 최화수 2006.07.05 6511
178 '지리산 산신령' 우천 허만수(5) 2 최화수 2006.06.25 6592
177 '지리산 산신령' 우천 허만수(4) 4 최화수 2006.06.12 8412
176 '지리산 산신령' 우천 허만수(3) 5 최화수 2006.05.27 6963
175 '지리산 산신령' 우천 허만수(2) 4 최화수 2006.05.10 7572
174 '지리산 산신령' 우천 허만수(1) 2 최화수 2006.05.01 7690
173 칠선계곡 은둔자들의 발자취(3) 5 최화수 2006.04.16 831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 Next
/ 14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