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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659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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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전란이 평정된 이후의 지리산 등산 초기였지요.
이 시기에 지리산 산행에 나선 '등산 선각자'(?)들은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니었지요. 그들은 대개 유명 의사나 체육인, 학자 등이었어요.
당시의 지리산 등산은 경상도 쪽은 천왕봉과 세석고원 정도로 압축돼 있었답니다.

이 동부지리산권을 찾았던 소수의 등산 선각자들.
그 때의 지리산 등산은 지금과 견주면 어떤 의미에서 동화세계와 같은 측면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리산중의 아주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 특별한 산정을 나누었던 것이지요.
법계사 초막(草幕)과 천왕봉, 세석고원이 그 때의 지리산 등산의 주요 거점이었는데, 이 세 곳에는 제마다 터줏대감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세석고원 움막의 우천 허만수, 법계사 초막의 손청화 보살, 천왕봉 토굴의 김순룡 노인이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천왕봉 남쪽의 법계사도 6.25 전란 와중에 불타버렸어요. 이 사찰 복원을 하겠다고 나서 사찰 터에 조그만 초막을 지어놓고 지키고 있던 이가 손보살이었지요.
또 천왕봉에는 빨치산 등이 이용한 반지하식 토굴이 있었는데, 전란 직후 제빨리 이 토굴을 차지하고 산장처럼 이용한 이가 진주 출산의 김순룡 노인이었어요.

이 가운데 등산객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던 곳이 법계사 초막입니다.
부산 대륙산악회의 성산씨 등은 법계사 초막에서 손보살이 내주는 팔선주를 마시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생각할 정도였어요.
손보살은 지리산을 찾는 부산, 경남 유지급 인사들에게 법계사 복원불사 시주금을 받아내고자 더욱 친절을 베풀었음직합니다. 어쨌든 모든 것이 불비했던 당시 법계사 초막은 아주 특별한 산장 역할을 한 셈이었어요.

허우천, 손보살, 김순룡 노인은 서로 낯을 돌리고 남처럼 지낸 것은 결코 아니었답니다.
거리적으로는 꽤 떨어져 있었지만, 사실은 세 사람이 서로 협력 체제로 함께 지냈던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어요.
손보살이 법계사 초막을 비울 때는 허우천이 와서 지켜주기도 하고, 천왕봉에 사람이 없을 때는 김 노인 또한 법계사 초막에 묵기도 했어요.
특히 손보살은 허우천이 들리면 한가족처럼 밥과 술을 대접했습니다.

허우천에게 푸근한 인정을 베푼 곳은 곡점마을의 유일한 민박집이자 국밥집이 또 있었어요.
당시에는 노선버스의 종점이 이곳이었는데, 국밥집 주인은 이광덕 조순례 부부였다고 합니다.
큰 가마솥에 종일토록 장작불을 지펴 끓여내는 이 집의 국밥 맛은 천하일미였다고 하네요.
이 집 안주인은 진주 태생의 미인으로 지리산을 닮아 인정도 많았다고 합니다.

국밥집 안주인은 세석고원에서 짐승처럼 야생하는 허우천을 끔찍이도 생각했답니다. 그녀는 그가 한번 찾아오면 며칠씩이나 붙들어두고 '영양보충'을 시켰다고 합니다.
허우천은 천성이 나무나 풀과 같아서 먹을 것이 없으면 그냥 굶고, 술이 있을 때는 몇 날 며칠이고 술만 마셔 건강을 잃고 있을 때가 많았다고 하지요.
곡점의 국밥집은 우천의 허기진 배를 언제든지 한껏 채워주었던 거에요.

허우천은 국밥집에서 국밥과 막걸리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면 그 길로 걸어서 진주까지 다녀오고는 했습니다.
진주에선 주로 친구의 책가게나 다방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만났어요. 또 따님을 살짝 만났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이 사실은 허만수님이 결코 유별난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인간애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보편적인 인간이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필자가 선배 사진기자와 함께 천왕봉 취재에 나선 길에 법계사 초막에 들린 것이 1974년 12월18일이었다고 했습니다. 초막에는 손보살 대신 키가 크고 수염이 더부룩한 한 남정네가 있었어요.
그 사나이는 우리에게 저녁식사를 내주고 따뜻한 잠자리도 제공해주더군요.
다음날 아침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냥 헤어졌는데,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뒤 필자는 그 남정네가 우천 허만수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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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거사 2006.06.25 22:44
    63년 등반시에 눈 속을 헤매다 밤이 되어 거의 조난 직전에서 법계사 보살님 덕택에 살아났는데,그 분이 손청화 보살이군요.
    글 읽고 그 분 존함을 알게되었읍니다.
    허리까지 빠지던 눈 속을 물들인 군잠바 에 웍화 신고 갔다가 길 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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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6.06.26 00:10
    여산 선생님의 이글은 몇번을 읽어도 새롭고 흥미롭답니다,
    그때 우천님과 대화도좀 나누시고 사진도 찍어두실 것인데 그랬군요,
    언젠가 읽었던 김현 거사님의글도 생각이 납니다,
    올여름엔 도봉산 계곡이나 뱀사골이든 피아골에서 만날수있도록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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