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신령' 우천 허만수(1)

by 최화수 posted May 0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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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1980년대 중반 처음으로 칠선계곡을 찾게 된 것은 우천 허만수(宇天 許萬壽) 선생의 족적을 더듬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칠선계곡은 이정표 하나 없는 것은 물론, 길이 불분명하여 길 안내자는 머리가 빙빙 돌 지경이라고 말하고는 했지요.
모든 것이 불비했던 그 시절에는 칠선계곡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자체가 어렵고 힘든 노릇이었어요.

칠선계곡을 답파하려면 우선 산길을 걷는 훈련은 물론, 체력을 다지는 것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산악 선배들의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칠선계곡 답파에 앞서 주능선 종주 등을 여러 차례 하기도 했었지요.
그런 뒤 칠선계곡 답파에 나섰는데,  로타리산장에서 한밤중에 출발하여 천왕봉을 거쳐 당일로 하산하는 시간계획을 세웠답니다.

우천 허만수는 누구인가?
왜 그이 때문에 칠선계곡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그 해답은 중산리계곡 두류교 옆 천왕봉 등산구의 자연암석 위에 세워놓은 그이의 추모비에 씌어 있습니다.
'산을 위해 태어난 산사람 우천 허만수 추모비'-그 비석 뒷면에는 그이의 지리산 행적과 산사람으로서의 면모를 소상하게 적어 놓았어요.

이 비문은 참으로 명문으로 구절구절 감동이 한 아름씩 넘쳐납니다.
그이를 어째서 세상 사람들이 지리산 최초의 '인간 산신령' 또는 '지리산 산신령'이라고 부르는지 능히 짐작하게 해주거든요.
특히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 비문의 마지막 구절이었어요.

[..그런데 어찌된 일이랴, 님은 1976년 6월 홀연히 산에서 그 모습을 감추었으니 지리 영봉 그 천고의 신비에 하나로 통했음인가?
가까운 이들과 따님 덕임의 말을 들으면 숨을 거둔 곳이 칠선계곡일 것이라고 하는 바, 마지막 님의 모습이 6월 계곡의 철쭉빛으로 피어오르는 듯하다.]

바로 이 대목이예요.
'님의 정신과 행적을 본받고자 이 자리에 돌 하나 세워 오래 그 뜻을 이어가려 하는 바이다' 라고 끝맺은 이 비문에서 우천의 최후를 언급한 대목은 좀체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였습니다.
칠선계곡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인간 산신령의 영원한 안식처가 된다는 것일까요.

우천이 최후의 원시림지대인 칠선계곡에서 아무런 흔적도 남겨놓지 않은 채 증발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답니다.
추모비문에 쓰인대로 그이와 가까왔던 사람들과 따님의 증언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 증언이란 '평소에 허만수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에 근거하는 추상적인 추론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요.

지리산의 '인간 산신령' 우천 허만수는 1976년 6월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답니다.
그이는 아무런 흔적도 남겨놓지 않고 사라져버렸어요.
그 이후 아무도 그이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군요.
그가 어디서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칠선계곡에서 숨을 거두었을 것'이라고 추모비문에까지 씌어 있지요. 어째서일까요?
그이는 가족을 버리고 지리산에 입산하여 30년 가까이 짐승처럼 야생했답니다.
그이는 평소 가까운 친척이나 딸에게 자신은 최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증발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살아있을 때처럼 죽은 뒤에도 어떠한 부담도 주지 않으려고 한 것이지요.

그이는 지리산 가운데 칠선계곡의 자연세계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고는 했어요.
허만수님은 그 칠선계곡의 원시 자연세계에 동화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가끔씩 내비치고는 했었다는 거예요.
원시세계에서 태고의 이끼처럼, 풋풋한 나뭇잎, 또는 돌이나 흙처럼 자연의 한 구성 분자로 동화하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