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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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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맞춰 주게. 나의 순결은 너의 순결하고만 결합할 수 있다. / 어서 입 맞춰 주게. / ...우리들의 온갖 색갈을 한 순결에게 / 그리하여 매어다오, 나를 매어다오. (A 세제르의 '귀향 수첩').
밤머리재~도토리봉~동왕등재~서왕등재의 능선길은 아직 때묻지 않은 처녀의 순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리산 주능선과 그 주변의 많은 등산로들이 뭇 산꾼들에게 짓밟힐대로 짓밟힌 것과 너무나 비교가 된다.
"입 맞춰 주게" 하고 중얼거리고 싶은 능선길이다.

그동안 왕등재라면 외곡리와 수철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늪이 있는 서왕등재를 일컬었다. 실제 등산객들도 서왕등재~새재~쑥밭재 구간은 그런대로 다녔지만, 서왕등재~동왕등재 구간은 거의 발길을 들여 놓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곳은 야생동식물의 요람으로 자리했고,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길 또한 처녀의 순결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미치지 않은 곳이라 해도 일반적으로 능선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골짜기가 아닌, 능선상으로 걸어가는 것은 큰 문제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동왕등재~서왕등재 구간은 녹음기가 되면 현지 주민들조차 발길을 들여놓는 것을 꺼려했었다. 가시덤불과 덩굴이 어지럽게 엉켜 있고, 무엇보다 독사와 같은 맹독성 야생동물과 조우할 위험이 다른 어느 곳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밤머리재를 넘는 도로가 열린 뒤로 산악인들이 이 능선길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다른 지리산 주변 등산로와 달리 좁다란 길만 나 있다.
능선길을 따라가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지만, 군데군데 길을 찾느라 잠시 두리번거려야 할 곳도 있다.
간혹 마주치는 등산길을 알려주는 리번이 반가울 정도로 한번씩은 길 자체에 신경을 쓰게 한다. 하지만 악천후가 아니면 길을 아주 잃을 염려는 없다.

등산로는 시종 부드러운 흙길이어서 마치 폭신한 카피트를 밟고 가는 느낌이 들 정도다. 잎을 떨군 나목들의 가지들이 때때로 얼굴과 팔을 때리거나 붙들고는 하지만, 결코 매섭지는 않다.
도토리봉~동왕등재 구간은 거의 V자 형태로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교차하는데, 내리막길은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낙엽이 뒤덮고 있어 독특한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밤머리재에서 도토리봉까지 오르는 비탈 역시 상당히 가파른 편이다.

동왕등재~서왕등재 구간은 약간의 오르막, 내리막길이 반복되지만 힘든 곳은 없다. 더구나 천왕봉, 중봉, 하봉을 계속 바라보면서 걸어가는 감회가 각별하다.
능선 주변의 수림은 대부분 활엽수림으로 죄다 잎을 떨구고 있어 조망은 어느 곳이나 시원하게 열려 있다.
하지만 녹음기에는 시야가 가릴 만큼 나뭇잎들이 뒤덮을 것은 물론, 나뭇가지와 가시덤불, 그리고 넝쿨 등이 보행에 지장을 줄 듯하다.

서왕등재에서 하봉 방향으로 조금 더 전진한 뒤 외고개에서 외곡마을 또는 오봉리로 하산하는 것이 아주 수월하다.
오봉리는 지리산권 마을 가운데 전기가 가장 늦게 들어간 오지마을로 독특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원시수림을 뚫고 작은 계곡을 끼고 하산하는 재미를 맛보려면 수철리로 가는 길을 택한다.
왕등재에서 수철리와 외곡리를 잇는 길은 지난날 이곳 주민들의 생활통로였다. 왕등재 늪 북단에서 수철리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왕등재~수철리는 현재는 거의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상단부에는 길이 희미하게 이어져 있다. 또한 가파른 비탈에다 바닥에 미끄러운 돌들이 뒤엉켜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미끄러질 염려도 따른다.
중턱 정도만 내려가면 길도 뚜렷해지고 무엇보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더불어 하산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거꾸로 수철리에서 왕등재로 오른다면 꽤 힘이 들 듯하다. 녹음기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부기(附記)
필자는 지난 2001년 3월17, 18일 PC통신 '천리안'과 인터넷 '다음' 카페 '지리산 사랑 동호회'의 3월 정기산행에 참여, 밤머리재~도토리봉~동왕등재~서왕등재~수철리 산길을 그들과 함께 걷는 행운을 누렸다.
PC통신과 인터넷의 특성을 활용, 전국 각지의 지리산 메니아들이 밤늦은 시각까지 집결장소에 모여 야영을 한 뒤 제마다 엄청나게 큰 배낭을 메고 일사불란하게 산행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

산행이 끝난 뒤 경호강변으로 자리를 옮겨 산행의 즐거움을 뒤풀이 한마당으로 정리하면서, 또 전국 각지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떠나야 하는 석별의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나이와 직업, 사는 곳을 가리지 않고 지리산 사랑 정신 하나로 연대, 건강한 심신을 가꾸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젊고 아름다웠다.
'지리산 사랑 동호회'의 젊음과 패기, 우정과 사랑의 결속이 지리산처럼 더욱 굳건해지를 바란다.

  • ?
    섬호정 2007.10.22 17:40
    '입맞춰 주게.~순결이 결합할 수있는 그 능선길을 걸어본 환희를 느낍니다
    저의 80년 7월,첫 지리능선 오르던 것 처럼, 오랜 글에서 다시 지리 곳곳의 정취를 떠올립니다
    如山선생님 건안하시길 빕니다
  • ?
    오 해 봉 2007.10.23 23:38
    저 도토리봉을 두번 올라가 봤는데 두번다 혼났습니다,
    처음은 서리내린 미끄러운길에 늑대울음 소리에 혼나고
    두번째는 태극종주때 20여kg 정도의 배낭이 무거워서 혼났지요,
    수철리나 오봉리도 가보고 싶지만 요즈음은 50만원짜리 단속이
    무서워서 못갈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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